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YWCA를 거쳐 1995년 한국디자인진흥원에 합류했다. 2001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디자인총회(ICSID) 중 ICSID 총회(General Assembly) 준비를 총괄했고, 영국 킹스턴 대학교에서 큐레이팅 컨템포러리 디자인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의 다양한 사업 부서 부서장을 맡았다. 2020년 역량강화본부장으로서 디자인 정책 연구 및 R&D, 인력 양성, 전시 컨벤션, 글로벌사업 등을 총괄했다. 2026 세계디자인수도 선정 운영위원장을 맡았으며 한국여성디자이너협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디자인연구소는 최고 전문가들의 느슨한 연대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자 합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에 합류하기 전에는 시민 단체에서 근무했다고 들었어요.
당시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한 움직임이 한창 활발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항상 관심이 많았기에 대학 졸업 후 시민 단체에 들어가 시민사회 운동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사교육 문제가 극심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활동을 하는 동시에 홍보·출판 간사로 일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기반이 되어 1995년 한국디자인진흥원으로 이직하게 됐죠.
그럼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첫 임무는 홍보 업무였나요?
맞습니다. 뉴스레터를 제작하고 당시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발행하던 〈산업디자인〉지 편집장을 맡기도 했어요. 이후 홍보 업무 외에도 국제 협력, 연구·조사, 기업 지원, 컨벤션, 인력 양성 등 다양한 사업을 주도했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 디자인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였어요. 기업들이 급성장하면서 진흥 기관들 역시 이에 발맞춰 다양한 지원 사업을 시작했죠. 어떻게 보면 제가 운이 좋았던 거예요. 덕분에 다양한 사업을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한 흐름이 200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맞습니다. 한국은 2000년 세계그래픽디자인대회와 2001년 세계디자인총회(ICSID)를 잇따라 유치했습니다. 저도 굵직한 국제 디자인 행사를 치르며 해외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었어요.
지금도 종종 회자되는 차세대 디자인 리더 육성 사업도 운영했던 것으로 압니다.
10년 정도 진행한 사업인데 저는 단순히 행정 지원을 하는 것을 넘어 젊은 디자이너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데 방점을 두었습니다. 후배 차세대 디자인 리더들이 먼저 선정된 선배들을 보며 자극과 영감을 받도록 한 것도 의미 있었습니다. 이 사업을 거쳐 간 디자이너 중 상당수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되었으니, 개인적으로도 보람을 느낍니다.
오래 몸담았던 조직을 떠나 올해 디자인하우스 디자인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배경에 관해 설명해준다면요?
한국디자인진흥원 근무 당시 보람도 있었지만,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거나 사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늘 어려움에 봉착했어요. 내·외부적으로 꼭 맞는 전문가를 찾기도 힘들었고. 최고의 전문가들과 함께 기획해 좋은 프로그램, 좋은 전략을 수립하고 좋은 사업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컸습니다. 부처별로 디자인 영역이 나뉘는 사일로 현상도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디자인 영역 간 장벽도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법과 제도는 그만큼 빨리 바뀌지 못하기 때문이죠. 조직 간, 산업 간 경계 없이 전체를 아우르는 솔루션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디자인연구소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디자인하우스가 그러한 비전을 실현하기에 적절한 곳이라고 판단한 이유가 있나요?
민간 기업이지만 일정 부분 공익적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보니 공공부문에서의 제 경험을 살리면 좋은 시너지가 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특정 부처의 산하 조직이 아니기에 현장에 필요한 것을 영역 구분 없이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어요. 사람과 정보가 모이는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자산이죠.
연구소 운영에 본인이 쌓은 노하우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글로벌 활동을 오랫동안 주도해온 만큼 해외 디자인계와 쌓아온 네트워크를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업과 학계를 막론하고 함께 협력하는 일을 해온 조직에 있었기 때문에 국내 전문가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도 제가 내세울 만한 요소입니다. 이런 네트워크를 활용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숙제만 남았네요.
연구소를 통해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궁극적으로 디자이너나 디자인 신 자체의 도메인을 확장하고 기회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앞서 말했듯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일하는 방식, 고용 형태도 바뀌고 있죠. 단일 기업의 역량과 자원만으로 시대의 흐름에 대처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융합과 협력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디자인연구소는 최고 전문가들의 느슨한 연대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자 합니다. 일례로 AI 시대가 되면서 데스크 리서치에 예전만큼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없어지고 있어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획이죠. 디자인연구소는 일종의 기획 집단입니다. AI를 기반으로 도출한 결과가 타당한지 판단해줄 전문가 그룹, 즉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저와 디자인하우스의 네트워크 및 아카이브에서 솔루션을 찾을 수 있다고 봐요.
최근 한국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한국 디자인을 향한 관심도 느껴지고요.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관심에 응할 만한 역량이 되는지 아직 조금 미지수입니다.
글쎄요. 제가 해외 유수의 유명 디자인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그들과 이야기해본 바로는 국내 디자이너들의 역량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훨씬 더 뛰어난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디자이너도 많고요. 다만 이것을 전략적으로 어떻게 정리하고 어필할 것인지에 대한 경험치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IDEO의 디자인싱킹도 따져보면 많은 디자이너들이 늘 해왔던 방법론이죠. 다만 IDEO는 이걸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마케팅도 잘했습니다. 체계화한 방법론을 반복적으로 알리면서 결국 자신만의 자리를 공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필립 스탁이 최고의 산업 디자이너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과연 디자인 역량만으로 그가 스타가 되었을까요? 저는 매력적인 퍼포먼스가 곁들여진 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스퍼 모리슨 역시 그가 글을 잘 쓰지 않았다면 지금의 명성을 얻지 못했을 거라고 봐요. 열쇠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습니다. 대중에게도, 클라이언트에게도 능숙하고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던 게 결국 명성을 가르는 척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디자이너들도 이런 부분을 보완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에 공개할 디자인연구소의 프로젝트 이야기를 나누며 인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디자인연구소는 디자인 주도의 임팩트 비즈니스 전략을 연구·기획하는 곳입니다. 톱 티어 전문가들과 협력해 새로운 방식x과 개념의 싱크 탱크 오픈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에요. 미래 디자이너들의 역량 강화 활동에도 큰 비중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일종의 스터디 모임을 결성하는 동시에 디자인 리더 그룹 커뮤니티를 조직해 교류의 폭을 넓히려고 합니다. 실용 연구와 역량 강화 교육이라는 두 축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하려고 하니 디자인계의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 디자인하우스 맹은주 디자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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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8년간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근무하며 디자이너들의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온 맹은주가 디자인하우스의 신설 조직 디자인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했다. 필드의 플레이어로 전환기를 맞이한 그를 만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었다.Share +바이라인 : 글 최명환 편집장 사진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