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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문자를 예술로 만든 그래픽 디자이너 네빌 브로디
산업과 비주얼 아트의 중심을 논할 때 네빌 브로디(Neville Brody)를 빼놓 수 없을 것이다. 그는 1990년대부터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해체주의 타이포그래피의 초석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실험적인 도전으로 디자인의 영역을 확장해가는 네빌 브로디가 지난 8월 17일 NHN 사옥에서 열린 ‘타이포잔치 사이사이’의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자신만의 확고한 개성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디자인이 나오길 바란다.”


흔히 기업형 디자이너라 불리는 폴 랜드(Paul Rand)와 비교했을 때, 1990년대 당시 당신의 그래픽 작업은 매우 실험적이었다. 혹평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처음부터 기업에 어울리는 디자인이라든지, 상업성을 목적으로 한 디자인에는 관심이 없었다. 특별히 스타일을 고집하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다. 그저 순수 회화적인 관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접근하는 데에 관심이 많았을 뿐이다.

디자인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
내 주변 모든 것이 디자인 소스가 된다. 음악, 문학, 영화를 비롯해 길을 걷다 보는 모든 사물에서 영감을 얻는다. 심지어 당신이 지금 입고 있는 티셔츠에서도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다다이즘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초현실주의 사진 작가 만 레이(Man Ray), 팝아트의 거장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과 앤디 워홀(Andy Warhol), 추상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락(Jackson Pollock), 독일 그래픽 디자이너 얀 치홀트(Jan Tschihold)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이 내 작업에 영향을 준다.

순수 회화로 접근한 편집 디자인이라면 가독성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당시 주변 반응은 어땠나?
가독성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타이포그래피는 그저 또 다른 가능성의 한 부분이다. 당시 추상화나 추상 조각은 많았지만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는 실험적인 시도가 없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더불어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실험도 가능해졌다.

컴퓨터의 발달이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열어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디자이너의 전문성을 저해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하지만 사견을 말하자면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순 있지만 모두 사진작가가 될 순 없고, 누구나 글을 쓸 순 있지만 그들 모두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이력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타이포그래피 잡지 <퓨즈Fuse>다. 어떤 의도로 이 잡지를 시작하게 되었나?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 시작했다. 컴퓨터가 발달하기 전에는 <퓨즈> 같은 잡지는 상상할 수 없었다. 컴퓨터로 디자인 작업을 하기 전에는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를 만들 수 없었던 것은 물론, 타이포그래피 분야만을 오랫동안 공부한 소수만이 이 일에 관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의 발달로 누구나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타이포그래피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1 <더 페이스> 1984
2 <더 페이스> 1985 사진 제이미 모르간(Jamie Morgan)

네빌 브로디 스튜디오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만큼 굉장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러다 리서치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바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내 이름을 건 스튜디오를 운영하니 클라이언트들이 모든 작업을 내가 직접 진행해주길 바랐다. 또한 내가 모든 미팅에 참여하고 모든 전화를 받아주길 원했다. 그건 참 피곤한 일이다. 두 번째 이유는 디자인 조사 과정을 좀 더 강화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회사에는 유능한 디자이너가 많기 때문이다. 네빌 브로디 스튜디오라는 이름은 아무래도 직원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디자인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부터 영국왕립미술대학의 커뮤니케이션 아트&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자 네빌 브로디의 모습이 궁금하다.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학과장의 업무도 하나의 디자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연구실을 만들고 다른 학문과 결합된 형태의 색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학과장에 부임한 이후 RCA 문화를 변화시키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전에는 RCA가 결과물을 내는 것을 중요시했다면 지금은 생각하는 과정을 디자인으로 끌어 내는 교육에 힘쓰고 있다.

한국타이어의 로고 디자인, LG전자의 냉장고 표면 디자인, CJ 프레시안 로고 디자인 등 한국 브랜드와 협업한 경험이 있다.
일부 한국 기업은 아직도 낡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실험적인 디자인 방법론을 제시하면 겁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촉박한 업무 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길 때도 있었다. 이런 작업 과정이 내게는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디자인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직원들을 대상으로 창의적인 디자인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업 구조 역시 지나치게 수직적 구조를 강조하는 것보다 수평적 구조를 지향해야 한다. 수직적 관계에서는 어린 직원이 윗사람에게 질문하거나 도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어디에서나 나올 수 있다.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내년에 있을 ‘2013 타이포잔치’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행사다. 어떤 성격의 비엔날레가 되길 바라나? 그리고 타이포그래피가 사회 문화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역동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를 지향해야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이포잔치에서는 타이포그래피가 포스터나 책을 넘어 사운드, 영상, 설치 작업 등 다양한 미디어와 혼합해 사용되어야 한다. 더욱 자유롭고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들고 싶고, 타이포그래피의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글자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정보를 담는 글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설명해주는 글자, 마지막으로 시처럼 마법 같은 힘을 가진 글자가 있다.

마지막으로 제2의 네빌 브로디를 꿈꾸는 젊은 디자이너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제2의 네빌 브로디가 아닌 자신만의 개성을 지닌 디자이너가 되길 바란다. 세상에 널린 디자인은 혼자만의 생각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디자이너들이 함께 모여 완성한 것이다. 디자이너 각자 자신만의 확고한 개성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디자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스로를 믿어라.

*타이포잔치 사이사이는 ‘2013 타이포잔치’ 전시 구성과 장기적 발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지난 8월 17일 국제조직위원회 위원인 네빌 브로디, 하라 겐야(Hara Kenya), 왕쉬(Wang Xu)가 연사로 참석해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3 Postmodernism Cover 2011 클라이언트 V & A 매거진
4 Don’t Argue 레코드 커버 1987 클라이언트 Parlophone Records


5 Embrace Fallure No Copyright 2010 클라이언트 Anti Design Festival


6 Arena Homme+ 2009 클라이언트 Bauer Publshing 사진 유르겐 텔러(Juergen Teller)


7 Arena Homme+ 2010 클라이언트 Bauer Publshing 사진 데이비드 심스(David S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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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최명환 객원 기자 담당 박은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2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