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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K-Pop Design Not One Without the Other 디자인이 없으면 K팝은 빛나지 않는다
K팝이 달라졌다. 음악 얘기만이 아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월간 <디자인> 2009년 2월호 리포트 ‘한국 음악 산업의 디자인, 안녕하십니까?’에서 음반 디자이너 손재익은 “음악 디자인의 성패와 역할은 음악 산업의 변화에 달렸다”고 말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음악 산업이 조금은 달라졌으니 일단은 희망적인 듯하다. 하지만 이런 음악 산업 디자인의 변화는 잘나가는 아이돌을 키워낸 몇몇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들은 회사 내에 디자이너를 두고 뮤지션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관리하며 브랜딩도 하지만 그 외 규모가 작은 회사들의 상황은 여전히 앨범 디자인 하나 처리하기에도 급급하다. K팝 시장은 더 이상 국내만이 아니다. 한국어로 된 노래는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 디지털 실크 로드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음악을 듣는 매체가 아니라 뮤지션의 아이덴티티를 집약한 제품이 된 앨범, 음악과 함께 무대 의상과 퍼포먼스까지 볼 수 있는 뮤직비디오, 뮤지션의 로고와 캐릭터를 활용한 MD 제품까지, 음악 산업의 디자인은 더 이상 2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철저한 기획 아래 발굴하고 키워내는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신경 쓰는 만큼 이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알리는 디자인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진다면 전 세계의 K팝 열풍이 더욱 거세지지 않을까 싶다. 이번 특집에서는 국내 대표 기획사 SM, YG, JYP를 중심으로 K팝 디자인 전략을 알아봤다.


산업적이고 기능적이며 전략적인 K팝과 디자인

싸이가 미국에서 예상 밖의 성공을 거둘 때 미국 언론에서는 그를 ‘촌스럽고 열정적인 음악을 하지만 세련된 옷을 입은 가수’라고 소개했다. 싸이가 옷을 잘 입는다? 맞는 말이다. 그는 말춤을 ‘경박하게’ 추고 스스로를 우스꽝스러워 보이게 하지만 의상만큼은 세련된 스타일을 고수한다. 아니라고? ‘보편적인 30대 체형’인 그가 주로 슈트를 입지만 그게 어색하거나 우스워 보이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자. 그의 몸에 꼭 맞춘 ‘고급’ 슈트는 단점을 개성으로 바꿔버린다. 중요한 건 이게 단지 그의 스타일리스트가 노력한 결과만은 아니란 점이다. 싸이의 ‘비주얼’은 YG엔터테인먼트의 장성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몫이었다.

그는 싸이 6집 앨범 디자인과 빅뱅의 , 태양의 디자인을 맡으며 음악 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음악이 음악으로만 소비되지 않는 시대의 한 단면이다. 이 얘기, 음악이 음악으로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는 비판적으로 이해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이런 세태를 비꼬거나 개탄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음악이 어떤 요소들로 재구성되며 대중에게 다가가는지를 새삼 상기하기 위해서다. 애초에 대중음악은 미디어와 친화적인 예술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현대 대중음악의 기반이 된 록 음악의 영향력은 1960년대 TV 보급과 같은 맥락에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스, 더 후 같은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타는 TV가 없었다면 등장할 수 없었다. 이때 그들의 음악은 들려주는 것 이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비틀스 멤버들의 헤어스타일과 옷, 엘비스 프레슬리의 잘생긴 외모와 섹시한 몸동작, 더 후의 시니컬하면서도 지적인 스타일이 그들의 음악을 완성시켰다. 이런 현상은 21세기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록 이후의 대중음악, 요컨대 팝 문화 전반의 흐름은 사운드와 비주얼 아트의 결합으로 더 복잡하고 풍성한 콘텍스트를 만들고 있다. 팝 산업은 이미 음악 산업 이상의 것으로 진화했다. K팝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아이돌 팝, 요컨대 K팝이 대세가 된 건 원더걸스의 ‘Tell Me’와 소녀시대의 ‘Gee’가 등장한 2008~9년이다. 가수들의 비주얼과 스타일이 중요하게 여겨진 건 오래전의 일이지만, 이때의 경향은 더욱 전문적이고 산업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김추자와 김완선, 소방차의 스타일이 비전문적인 견해, 다시 말해 그들을 발굴한 매니저나 음악가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었다면 21세기 한국의 아이돌 휘발성이 강해진 만큼 특징적인 인상을 남기는 게 중요해졌다. ‘훅송’이라는 표현이 중요하게 언급되었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충격적이기까지 한 비주얼 콘셉트였다. 이런 맥락에서 K팝 가수들의 아트 콘셉트는 더 많은 자본과 더 다양한 변화를 지향했다. 티아라의 인디언 분장, 포미닛의 뱀파이어 분장, 미쓰에이의 붕대 의상을 비롯해 비스트나 EXO K/M 같은 남자 아이돌 그룹의 황무지의 전사, 지구를 배경으로 한 무대 연출 등은 K팝의 디자인 요소가 단지 소수의 메이저 회사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이 모든 것은 단지 팝 음악과 패션의 결합이라는 구조를 넘어선다. 가요 산업의 구조 변화는 디자인을 음악만큼 중요한 요소로 여기게 만들었다. 여기엔 그룹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스타일뿐 아니라, 각 그룹을 하나의 브랜드로 이해하도록 만드는 전략이 다방면으로 고려된다. 새 앨범의 콘셉트에 의상, 헤어, 메이크업, 패션, 뮤직비디오 제작, 무대 연출에 이르는 모든 비주얼 아트를 통일시키는 건 이미 상식이다. 빅뱅의 앨범처럼 아예 현대카드와 협업하며 로고와 앨범 재킷을 새로 디자인하고, 팬들을 위해 ‘브랜드 가이드북’까지 제작해 배포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박진영과 G 드래곤은 헤드폰 제작사인 몬스터와 협업해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시장에 선보였다. 이런 작업의 근간에는 브랜드는 결국 소비자/팬덤에 의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는 마케팅 이론이 존재한다. 덕분에 현재의 아이돌 팝은 단지 ‘유행가를 부르는 아이돌 가수’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브랜드(이를테면 K팝)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물론 영미권이나 일본 음악 산업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더 산업적이고 기능적이다. 음악가나 밴드가 디자이너와 협업한 사례들은 서로의 브랜드를 매시업하는 단발적인 이벤트에 가까웠다면, K팝의 사례들은 기획사가 자신의 정체성과 지향, 그리고 타깃으로 삼은 소비자 그룹에 맞춰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고 있음을 시사한다. 회사는 가급적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를 디렉터로 승격시키며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게 한다. 이들의 역할은 각각의 그룹이나 가수에게 부여된 콘셉트가 앨범 디자인뿐 아니라 다양한 포맷의 결과물(음악, 뮤직비디오, 화보, 무대 연출에 이르기까지)에 일관되게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민희진 비주얼 & 아트 디렉터, YG엔터테인먼트의 그룹/가수의 비주얼은 소속사의 전략과 목적, 발매하는 음악의 장르와 스타일에 따라 기획되고 조율된 결과다.

원더걸스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동안 1950~60년대 미국 걸 그룹의 캔디 팝과 패션을 재해석한 스타일을 고수했고 소녀시대는 스키니 진-제복-빈티지-롤리 팝 스타일의 변화를 선보였다. 그사이에 등장한 2NE1은 빅뱅과 마찬가지로 스트리트 감수성을 고급 브랜드와의 매칭을 통해 드러냈으며 f(x)는 비주류 감수성을 메인 스트림에 접목시키는 데 성공했다. 남자 아이돌 그룹도 마찬가지다. 2PM의 와일드한 이미지는 2AM의 댄디한 스타일과 충돌하며 이란성 쌍둥이 같은 인상을 남겼고, 슈퍼주니어는 그룹과 유닛에 따라 ‘세련미’와 ‘촌스러움’을 동시적으로 선보였다. 샤이니는 판타지 만화의 주인공 혹은 정체불명의 캐릭터를 구현하며 호기심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이 시기가 한국에서 싱글 시장이 만개한 시기와 얼추 맞물린다는 점이다.

원더걸스의 ‘Tell Me’나 소녀시대의 ‘Gee’ 이전에 싱글 시장은 단지 앨범 홍보를 위한 시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09년 이후 디지털 싱글은 영미권의 7인치 싱글처럼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할 정도로 커졌다. 그만큼 음악은 휘발성이 강해졌고, 장성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비롯해 아메바컬쳐에서 다이나믹듀오, 슈프림팀, 프라이머리 등의 음반 디자인을 맡은 김대홍 디자이너 등을 K팝의 대표적인 아트 디렉터로 꼽을 수 있는데, 인디 신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붕가붕가레코드의 김기조, 파스텔뮤직의 김민정, 카바레사운드의 김유인 등을 우선적으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런 현상, 즉 대중음악에서 디자인의 비중이 커지는 것은 음악 산업의 밀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음악이 음악으로 소비되지 않는 시대, 음악이 음악 이상의 어떤 것으로 이해되고 수용되는 시대에 음악은 더욱더 미디어와 결합할 수밖에 없으며, 그를 통해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인상을 남기기 위해 온힘을 다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진짜’ 음악의 종말이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음악이 줄 수 있는 쾌락의 범위가 더 넓어지며 한국의 대중음악이 음악 산업의 범위를 확장하고, 그 결과 ‘팝 문화’라 부를 수 있는 무언가로 진화하고 있다는 징후로 여긴다. 바야흐로 가요가 단지 듣는 음악에서 보고 느끼고 상상하며 감각적으로 사유하는, 입체적인 문화 경험으로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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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3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