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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과 앤트맨의 쿨한 삼촌, 밥 레이튼


©Luigi Novi / Wikimedia Commons
우리는 보통 마블 코믹스를 생각하면 스탠 리나 잭 커비 같은 전설적인 창작자부터 떠올린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들이 1960~1970년대 손수 만든 마블 만화가 미국 대중문화의 큰 축을 형성했고, MCU 성공의 바탕을 제공했으니까. 하지만 좀 더 파고들면 오늘날의 마블 코믹스를 만든 숨은 주역들도 있다. 존 로미타, 짐 슈터, 존 번, 크리스 클레어몬트…. 이 중에서도 소위 ‘업계’에만 머물지 않고 만화라는 매체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한 인물도 있다. 바로 밥 레이튼이다. 특히 그는 아이언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이언맨은 스탠 리와 잭 커비가 탄생시킨 캐릭터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캐릭터, 다시 말해 천재에 재벌이며, 쿨한 바람둥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토니 스타크는 밥 레이튼을 거쳐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08년 영화 〈아이언맨〉이 만들어졌으니 넓은 의미에서 MCU 탄생의 초석을 닦았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20대에 접어든 밥 레이튼은 만화 그림 작가의 꿈을 비교적 일찍 실현할 수 있었다. 몇몇 출판사를 전전하던 그는 당시 협업자였던 데이비드 미클레이니David Micheline와 〈아이언맨〉 시리즈를 맡게 됐는데 사실 이때 시리즈는 판매 부진으로 폐간 위기까지 몰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켰다. 그야말로 환골탈태. 멋진 갑옷을 장착한 슈퍼히어로가 아닌 슈트 속의 한 인간, 토니 스타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천재 발명가에 재벌이지만, 여느 인간처럼 어려움과 고충을 겪는 캐릭터로 그리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Bob Layton
〈아이언맨〉 120호부터 시작한 ‘병 속의 악마(Demon in a Bottle, 1979)’가 대표적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토니 스타크의 음주 문제를 다뤘는데 자신감 넘치는 주인공의 어두운 면모를 당시 사회문제로 불거진 알코올중독과 결부시켜 만화의 전반적인 평판을 올리는데 기여했다. 지금도 술에 취한 토니 스타크의 초췌한 모습이 그려진 〈아이언맨〉 128호 표지는 미국 만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커버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아이언맨〉 225호부터 무기 개발로 부를 축적한 스타크사의 내밀을 파헤치는 아머 워즈Armor Wars도 주목할 만하다. 저스틴 해머라는 경쟁사 대표가 토니 스타크의 기술을 오랫동안 몰래 훔쳐 여러 악당들에게 팔아넘기는데, 토니 스타크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며 ‘쩐의 전쟁’이 펼쳐졌고, 여러 빌런은 물론 정부 기관 쉴드, 심지어 캡틴 아메리카와도 싸워 특허 기술을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전형적인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 복잡하게 얽힌 현실 속 역학 관계를 투영한 것이다.

이렇듯 밥 레이튼은 〈아이언맨〉으로 만화가 태생적으로 가진 권선징악과 흑백론을 흩어놓기 시작했고, 이는 후대 미국 코믹스의 스토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밥 레이튼은 또 다른 마블 캐릭터, 앤트맨에도 새 힘을 안겨준 것으로 유명하다. 하염없이 작아지는 이 히어로는 양자의 세계까지 진입해 MCU 엔드게임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영화를 본 독자라면 알고 있겠지만, 마이클 더글러스 배역의 천재 과학자 행크 핌은 스탠 리와 잭 커비가 낳은 원조 앤트맨이고, 좀도둑 스캇 랭은 밥 레이튼이 만든 새로운 캐릭터다. 태생이 다른 두 히어로 중 후자에 더 마음이 가지 않나? 이는 정확히 밥 레이튼의 의도였다. 아이언맨이 그랬듯 밥 레이튼은 슈퍼히어로의 초능력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했다.

그는 이후 마블을 떠나 발리언트Valiant라는 새 만화 출판사를 세우며 미국 독립 만화 출판 시장의 문을 열었다. 발리언트에서 밥 레이튼은 스토리와 그림, 편집장까지 맡았다. 미국 만화 시장에 한 획을 그은 발리언트를 1990년대 중반 모 게임 회사에 매각하고 은퇴 수순을 밟는가 싶었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할리우드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 작은 영화를 연출하거나 만화나 게임 같은 콘텐츠를 영화화하는데 필요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던 그는 〈아이언맨〉으로 두 번째 커리어를 시작했다.



©Bob Layton
마블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영화 산업에 뛰어들었지만, 사실 〈블레이드〉 외에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런 이들이 그야말로 올인한 것이 바로 〈아이언맨〉이었다. 지금 우리야 그 결과가 해피 엔딩인 것을 알지만, 당시 세트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마약에 시달리는 배우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지금은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존 파브로 역시 이때는 애매한 커리어의 감독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반신반의한 상황에서도 스토리 컨설턴트로 현장에 참여한 밥 레이튼만큼은 자신감이 넘쳤다. 〈아이언맨〉의 스토리에 확신이 있었고, 만화와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긴 세월을 보내며 대중의 니즈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예비 창작자들에게 자신을 믿으라고 조언한다. “만화를 처음 시작할 때 고되고 돈도 얼마 못 번다며 주위에서 모두 만류했다. 실제로 하루살이 인생으로 만화를 그렸지만, 정말 뼛속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나는 한 번도 다른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오로지 이 하나에만 매진했다. 자신의 마음속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이것이라면 앞만 보고 달려라.”

올해 칠순을 맞은 밥 레이튼은 레드 카펫에 서서 할리우드 스타 배우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기념사진을 찍는 동시에 여전히 연필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제는 주로 표지에 그림을 그리며 가끔 코믹콘에서 팬들과 만난다. 그런 그가 오는 8월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필자와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할리우드에서 한국 문화와 음식을 접했고, 한국 드라마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왜 한국이 이렇게 〈아이언맨〉에 관심이 많은지 개인적인 궁금증이 생겨 중국이나 일본을 지나쳐 한국을 방문한다는 말도 덧붙였다.(여담이지만 손예진, 김지원 그리고 신민아의 광팬이라고.) 그가 한국에 머무는 8월 19일부터 25일까지 성수동 메타그라운드에서 팬 미팅과 사인회, 클래스 등을 연다고 하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방문해봐도 좋겠다.


박경식 디자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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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