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모비스 엠비전 하이.
자율 주행 기술이 도입되면서 운전자 중심에서 목적 중심으로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PBV(Purpose Built Vehicle)는 대중교통, 화물 운송, 여가 등 운행 목적에 맞게 설계한 ‘목적 기반 모빌리티’를 말한다. 지난해 발표한 완성차업계 자료에 따르면, 2020년만 하더라도 PBV 글로벌 연간 판매량이 32만 대 규모로 신차 수요의 5%에 불과했지만, 연 평균 30% 이상 성장해 2025년에는 130만 대 규모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PBV 산업의 가능성을 엿본 국내 자동차업계도 미래 모빌리티 연구 및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현대모비스는 올해 초 CES 2023에서 ‘뉴 모비스’라는 새로운 비전과 함께 ‘모바일Mobile’과 ‘시스템System’을 합성해 만든 사명 ‘모비스Mobis’를 ‘모빌리티를 넘어선 통합된 솔루션(Mobility Beyond Integrated Solution)’으로 재정의한다고 선언했다. 자동차 부품 제조사에서 ‘모빌리티 플랫폼 프로바이더’로 도약하겠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2019년부터 공개한 자율주행 콘셉트카 ‘엠비전M.Vision’ 시리즈의 최신 모델인 ‘엠비전 투To’와 ‘엠비전 하이Hi’의 첫선을 보이며 PBV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6인승 엠비전 투는 도심에서의 자유로운 이동과 공유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모델로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Toward)’라는 콘셉트가 담겨 있다. 한편 엠비전 하이는 4인승 PBV로 레저, 사무, 휴식 공간을 필요로 하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춰 ‘사용자 중심의 경험(humanity)’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박스형 외관 디자인과 넉넉한 실내 공간, 회전형 시트가 특징인 엠비전 투와 엠비전 하이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바퀴가 직각으로 꺾여서 수평으로 이동할 수 있는 크랩 주행, 제자리 회전이 가능해 회전 반경 없는 유턴(제로 턴) 기능을 추가해 눈길을 끌었다.
백승우
현대모비스 디자인섹터장·책임연구원
“사용자와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새로운 디바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PBV 콘셉트카로 엠비전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미래 자율 주행 환경에서는 업무, 물류 배송 등 특정 목적 맞춤형 PBV가 대중화될 거라는 분석에 기반해 엠비전을 제안해왔다. 휴식·레저형 엠비전 하이는 휴양지의 컨테이너 홈에서 영감을 받아 외관에 박스형 디자인을 적용했고, 내부는 요트 인테리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마찬가지로 엠비전 투의 외형도 박스형으로 디자인했는데 제작 비용을 절감하고 운송 부피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고 속도가 60km 이하인 도심 저속 주행용 PBV 특성상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탓에 유선형 디자인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경제성이 높은 모던한 스타일을 적용했다.
두 모델의 목적이 상이함에 따라 디자인 접근 방식도 달랐을 것 같다. 도심용 PBV 엠비전 투의 디자인 특징을 설명해달라.
IPDS(Integrated Pillar Drive System)를 접목한 4개의 필러 모듈을 시각적으로 강조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기존 자동차의 필러는 차체를 지탱하는 구조물에 불과하지만 엠비전 투의 필러 모듈은 자율 주행을 위한 센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라이팅, 주행을 위한 차세대 기술 ‘이코너e-corner 모듈’을 통합했기에 이를 디자인으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했다. 모듈 4개가 차량의 전후 측면에서 중앙의 스페이스 모듈을 단단하게 지지하는 형태를 보여주기 위해 하이퍼 실버 도색을 적용해 강렬한 대비감을 주었다. 외관에 광택이 있는 평면 유리를 여러 각도로 심리스하게 이어 붙여 블랙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고급스러운 효과를 주었다.
UX 디자인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엠비전 투에는 주행 시 주변 정보가 표시되는 복합 현실(Mixed Reality, 이하 MR) 기술을 적용했다. 통합 필러 모듈에 연결된 4개의 MR 디스플레이에는 외부 카메라를 통해 촬영된 주행 영상이 실시간으로 송출되어 실제로 창문 밖을 바라보는 듯한 효과를 연출한다. 디스플레이에는 AR 그래픽으로 차량 주변의 상점 광고와 이벤트, 지역 정보 등을 표시한다. 각 좌석에는 탑승객의 시선과 얼굴 표정, 제스처 등 생체 신호를 인식해 분석하는 인 캐빈 감지 (in-cabin sensing) 기술을 접목한 3D 카메라를 장착했다. 이는 사용자의 시선 기반으로 의도를 파악해 상황에 맞게 UI를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프로액티브 UX 기능과도 연동된다. 탑승객이 루프를 일정 시간 동안 바라보면 조명 조절 기능이 표시되고, 시선이 도어를 향하면 개폐 방법을 안내하는 식이다. 이처럼 미래 모빌리티는 사용자의 지시에 일방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사용자와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새로운 디바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현대모비스 엠비전 투. 도어 하단에는 투명 LED 디스플레이를 적용했고 실내에는 세로형 XR(확장 현실) 디스플레이 화면을 설치해 실시간 정보를 제공한다.
교통 약자를 배려한 부분도 눈에 띈다.
저상형으로 디자인해 휠체어가 쉽게 오르내리고 고정될 수 있도록 했다. 폴딩, 회전, 탈부착이 가능한 이동형 좌석인 피보팅 벤치pivoting bench는 여유 공간을 만들어준다. 탑승 인원에 따라 실내 공간의 레이아웃 변경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엠비전 하이는 디자인을 어떻게 풀었나?
사용자의 실내 거주성을 강조한 모델이기에 성인 기준으로 허리를 굽히지 않고도 내부에서 이동이 용이하도록 넉넉한 높이를 확보했다. 원거리 조작을 위한 시선 인식 마우스 기능, 프로젝터 및 가변 투과 필름을 이용해 투명한 유리가 스크린으로 바뀌는 기능도 추가했다. 좌석 모드는 벤치, 라운지, 영화관 등 설정에 따라 자동으로 위치와 방향이 바뀐다. 아웃도어 활동도 고려해 차량 외부에서도 표면 진동 스피커를 활용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레저와 휴식을 위한 디자인에 집중했다.
엠비전이 근미래에 상용화될 수 있다고 보나?
현대모비스의 역할은 양산차를 시장에 내놓는 것이 아닌 미래 자율 주행 환경에서 PBV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연구·개발하는 데 있다. 실제 상용화에 앞서 선행 연구 차원에서 어떤 부품이 필요한지 검토하고 실험하며 콘셉트 디자인을 제안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따라서 상용화 시점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기계, 전자, 센서, 소프트웨어, 반도체 기술을 융합하는 현대모비스의 모빌리티 혁신이 PBV 산업의 발전을 이끌 것으로 예상한다.
자료 제공 현대모비스, mobis.co.kr
- 공상을 현실로 바꾸는 모빌리티 디자인 파이어니어 자율 주행 공유형 PBV 시대의 서막, 현대모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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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도 전기차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1894년 영국 발명가 토머스 파커Thomas Parker는 세계 최초로 양산형 사륜 전기차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기술적 한계, 여기에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 채굴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금세 가솔린 엔진 자동차에 왕좌를 내줬지만 말이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에디슨에 가려져 잊혔던 니콜라 테슬라가 오늘날 다시 주목받았듯 전기차 산업도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금 소개하는 디자인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성공과 실패의 교차로에 서 있다. 하지만 성패와 상관없이 이들이 추구하는 혁신적 실험은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길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모빌리티 디자인 파이어니어라고 부르기로 했다.Share +바이라인 : 글 서민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