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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모빌리티 4.0시대를 질주하는 한국인 디자이너들 '포르쉐다움'을 재해석하는 디자인
자동차의 개념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요즘, 자동차 기업들은 잇따라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향을 선언하며 격변의 파도를 타고 있다. 사실 그 방식은 제각각이다. 모빌리티의 범주 안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되레 오랜 세월 축적한 전통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적인 모빌리티 기업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디자이너들에게 변화에 대처하는 그들만의 방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내가 꿈꾸는 차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포르쉐의 2대 경영인 페리 포르쉐Ferry Porsche의 말처럼 포르쉐는 고객들의 꿈을 실현시키는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75년간 장인 정신으로 구축한 디자인 언어는 멀리서도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는 시그너처 포인트가 되었다. 하지만 모빌리티업계를 뒤흔드는 변화 앞에서도 본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잠시 귀국한 포르쉐 외장 디자이너 정우성에게 물었다.



포르쉐 본사 디자인 부서 ‘스타일 포르쉐’의 선임 외장 디자이너. 홍익대학교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했고, 독일 포르츠하임 대학교에서 자동차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포츠담의 폭스바겐 디자인 센터에서 외장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2012년부터 현재까지 포르쉐 외장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J1 타이칸, 911 GT2 RS, 919 스트리트 등의 디자인에 참여했다.
스타일 포르쉐 선임 외장 디자이너
정우성


포르쉐에 합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포르츠하임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폭스바겐과 포르쉐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디자인 실무를 경험했다. 졸업 후 두 회사에서 모두 입사 제의를 받았는데 폭스바겐을 첫 직장으로 선택했고 5년 뒤 포르쉐로 이직했다. 처음부터 포르쉐를 택하지 않은 건 더 경험을 쌓고 싶어서였다. 포르쉐에 합류하고 나서는 은퇴할 때까지 남아 있을 작정이었으니까.(웃음) 포르쉐는 인턴을 하기 이전부터 특유의 상징적인 디자인 덕분에 매력적인 브랜드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일해보면 환상이 깨지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평소 좋아했던 포르쉐 모델은 무엇인가?
역사적인 레이싱카 중 하나인 포르쉐 917. 과거 르망 24시 레이스에서도 우승하며 전설적인 모델로 불렸다. 성능과 디자인을 두루 갖췄는데 뛰어난 비례뿐만 아니라 디테일한 곡면 처리까지 훌륭하다. 클래식카들의 레이스인 르망 클래식Le Mans Classic에서 본 적이 있는데, 세월이 오래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며 달리는 모습을 보니 역시 대단한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보면 매력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다.





919 하이브리드를 개량한 콘셉트카, 919 스트리트. 낮은 보닛과 일반 차량보다 낮은 좌석, 후면의 샤크핀이 돋보인다.
자동차 외장 디자인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산업 디자인군을 통틀어서 디자이너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분야가 극히 드물지 않나?(웃음) 특히 외장 디자인은 디자이너 1~2명이 전담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결과물을 온전히 자신의 작업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게다가 자동차는 공학적인 영역과 미학적인 영역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몇 안 되는 제품이다. 배, 기차, 항공기 등에서 엔지니어링을 디자인보다 월등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자동차를 다루는 외장 디자이너로 계속 일하고 싶다.

포르쉐의 디자인 프로세스가 궁금하다.
외장 디자이너의 경우 판매용 모델의 사전 개발과 양산을 위한 디자인, 콘셉트카 디자인 등을 맡는다. 사전 개발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디자인보다는 차체의 비례를 균형 있게 구성하는 작업에 집중한다. 새로운 기술을 차량에 어떻게 적용할지 상의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레이아웃을 잡고 나면 실질적으로 양산을 위한 디자인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팀 내부에서 직급에 관계없이 자신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양산 과정에서 외장디자인팀, 내장디자인팀, 휠디자인팀, 조명디자인팀 등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8개 부서가 협력한다. 콘셉트카 디자인은 양산차와는 디자인 프로세스가 다르다. 일례로 지난해 〈포르쉐 이코넨, 서울〉전에서 선보인 콘셉트카 919 스트리트의 경우 외장 디자인부터 조명, 휠 등 실내 공간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내가 직접 디자인했다. 콘셉트카는 목적에 따라 작업 과정과 방향성이 달라지는데, 디자인 스튜디오의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 미학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추후 출시할 모델의 예고편 격으로 양산차에 가깝게 디자인하는 경우도 있다. 개발 과정은 최대 1년 정도 소요된다.



신형 911 GT2 RS. 일반 도로와 레이싱 트랙 모두에서 주행 가능한 모델로, 보닛의 두 흡입구, 커진 에어 인테이크 등 레이싱 시 빠르게 엔진을 냉각시키기 위한 디테일한 장치가 돋보인다.
919 스트리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소개해달라.
포르쉐가 한동안 참가하지 않았던 르망 24시 레이스에 복귀하면서 2014년 선보인 레이싱카 919 하이브리드를 일반 도로에서도 주행이 가능한 양산차로 개발한 모델이다. 자칫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레이싱카 특유의 디자인을 순화시키면서도 919 하이브리드의 개성은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평소 모터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니 919 하이브리드도 관심 있게 지켜보았는데, 그런 모델을 기반으로 진행하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그야말로 꿈의 프로젝트나 다름없었다.

신형 911 GT2 RS의 디자인도 흥미롭다. 고성능 스포츠카인 만큼 엔지니어와의 협업이 중요했을 텐데.
일반 주행용 포르쉐 911 라인업 중 가장 빠르고 강력한 모델이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기존 911 GT2 RS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공학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아 엔지니어들의 요구 사항을 디자인으로 잘 소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일례로 엔진 냉각을 위해 공기 흡입이 중요해서 차량 전면부의 에어 인테이크를 크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크면 포르쉐만의 느낌을 해치기 때문에 성능과 심미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 조율했다. 트렁크 상단에 부착된 스포일러도 공기역학적 기능을 충족시키면서 아름다운 비례가 돋보이는 적정 선을 찾고자 노력했다.

듣고 보니 포르쉐 디자이너는 헤리티지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형성된 포르쉐의 정체성이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로 생각한다. 모든 디자인을 처음부터 개발해야 하는 스타트업들은 디자인이 쉬울까?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은 상황보다 적당히 제한된 환경에서 내리는 결정이 더 쉽고 창의적일 수도 있다. 결국은 디자이너의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포르쉐는 훌륭한 브랜드 헤리티지와 뛰어난 디자인 언어를 갖춘 기업이다. 특유의 낮은 전고와 펜더보다 낮은 보닛, 보닛부터 리어 범퍼까지 이어지는 상단의 플라이 라인fly line, 4점식 원형 헤드램프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디자이너의 관점에 따라 재해석해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고 끊임없이 재창조가 가능하다.







J1 타이칸. 포르쉐의 첫 순수 전기차로, 차체 하단에 배터리 팩이 위치해 차량의 전면부와 후면부를 트렁크로 활용할 수 있다. 전기차지만 포르쉐의 디자인 언어를 잃지 않고 깔끔하고 날렵하게 디자인했다.
최근 들어 자동차업계에서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전기차는 배터리가 무거워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공기 저항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공기역학은 내연기관차든 전기차든 어떤 자동차에나 필요한 것이다. 전동화 때문에 부각된 것뿐이지 그동안 자동차 기업들이 등한시한 것도 아니다.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한데 어우러지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자동차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전동화가 몇 년째 자동차업계의 주요 이슈다. 자율 주행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포르쉐의 디자인도 이런 추세에 영향을 받을까?
개인적으로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첫 순수 전기차 모델인 타이칸만 봐도 알 수 있다. 배터리가 차량 하단부로 들어가면서 휠베이스가 내연기관차보다 조금 길어지기는 했지만, 범퍼의 기본적인 레이아웃은 911 시리즈와 유사하다. 대개 보닛 안에 엔진이 없다는 점 때문에 전기차 디자인이 새로워 보이는데 포르쉐는 이전부터 모델에 따라 엔진 위치를 달리했을뿐더러 오래전부터 보닛 안에 엔진을 두지 않는 디자인도 시도해왔다. 전기차에 적합한 디자인을 보유하고 있기에 외관상 큰 변화를 줄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자율주행차의 등장도 포르쉐로서는 극적인 변화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태생부터 모터스포츠를 위해 개발한 스포츠카 브랜드인 만큼 앞으로도 운전자 중심의 디자인은 지속될 것이다.


장소 협조 포르쉐 나우 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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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박종우 기자 인물 사진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