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문라이트 가든 너리싱 핸드 워시, 문라이트 가든 너리싱 핸드 크림.
이스 라이브러리 제품들.
시그니엘 서울 리트릿 스파에 비치된 이스 라이브러리 제품들.
한국적 헤리티지의 재해석
이스 라이브러리
시작은 한방차였다. 평소 숙지황과 박하, 석창포 등을 섞은 차를 불면증 환자들에게 권하던 한의사 장동훈 원장은 그들에게서 흥미로운 변화를 발견했다. 증상이 점차 호전되는 것뿐만 아니라 피부가 눈에 띄게 밝아진 것. 추후 분석 연구를 통해 자신이 처방한 한방차에 피부 윤기를 되찾아주고 강한 미백 효과가 있으며 항산화 작용을 하는 AYM(Active Youth Molecule) 성분이 있음을 밝혀냈다. 당시 한방차를 처방받은 사람 중에는 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도 있었다. 한의학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한 그는 장동훈 원장과 함께 2018년 이스 라이브러리를 론칭했다.
브랜드의 시작이 한의학인 만큼 용기 디자인도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디자이너는 옛 문화의 아카이브인 책을 상징물로 디자인에 적용했다. 곡선 대신 계단처럼 층이 나눠진 형태는 한의학 고서가 차곡차곡 쌓인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캡에는 본질과 탄생을 상징하는 원을 적용했다. 그 결과 사각형과 원의 결합만으로 이루어진 시그너처 디자인이 탄생했다. 브랜드의 무드는 쇼룸 디자인에서도 이어졌다. 공간을 통해 이스 라이브러리의 진정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양태오 대표는 직접 디자인한 가구와 소품, 수집한 전통 가구를 활용해 세련된 한국적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공간을 구현했다. 용기부터 공간에 이르기까지, 그저 낡은 것으로 오해받던 전통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브랜드다. eathlibrary.co.kr @eathlibrary_official
이스 라이브러리 공동 창업자·총괄 디자인 디렉터
양태오
“한의학의 좋은 점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스 라이브러리를 론칭했다. 한의학이 미학적으로도 동시대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어 패키지는 물론 쇼룸 분위기와 접객 방법에도 이런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용기 디자인은 제품을 손에 쥐었을 때 안정감과 부드러움, 편안함 등이 느껴지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한의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리고 표현하는 것이 이스 라이브러리의 중요한 미션이다. 많은 사람에게 한국적 치유의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
‘레조넌트’.
‘네이키드 댄스’ 패키지.
‘데드 에어’의 퇴폐적이고 어두운 느낌을 살린 화보.
영감을 부르는 기이한 아름다움
오디티 프래그런스
홍콩의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 오디티Oddity는 2020년 컨템퍼러리 니치 향수 브랜드 ‘오디티 프래그런스Oddity Fragrance’를 선보였다. 오디티는 이 브랜드를 ‘창의적인 놀이터’라고 불렀는데, 평소 클라이언트 기반의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할 수 없었던 시도를 감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분위기만 남기고 사라지는 향수야말로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제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디티 프래그런스 향수는 시선을 집중시키는 독특한 디자인의 캡이 특징이다. 향수병으로는 성분과 조향사, 향의 특징 등을 기입한 흰 라벨로 필요한 정보를 충실히 전달하고, 캡으로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한다. 세 종류의 향수 캡은 종류별로 각각 나무, 숯, 비스무트(*)를 활용해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급변하는 트렌드를 파악하고, 클라이언트의 요청 사항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디자인 프로젝트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작업 과정이다. 특히 각 향수의 콘셉트와 향을 통해 전달하려는 분위기, 캡에 쓰인 원재료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모두 연관된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편안함과 애착, 친밀함을 표현하는 ‘네이키드 댄스Naked Dance’에는 따뜻한 느낌의 목재를 사용한 반면, 퇴폐적인 느낌을 전하는 ‘데드 에어Dead Air’에는 새까맣게 태운 숯을 활용했다. 은백색의 금속인 비스무트를 날카로운 분위기의 ‘레조넌트Resonant’에 활용한 점도 돋보인다. 각 원재료는 수작업을 거쳐 가공한 뒤 에폭시 수지로 감싸 10단계의 작업 과정을 거친다. 손수 만들다 보니 같은 향수라도 캡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 오디티 프래그런스만의 매력이다. 따라서 모든 향수가 독립적인 수집품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오디티 측은 “이것이야말로 우리 브랜드의 특징이다. 우리가 내놓는 모든 제품에 창조적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역설했다. oddityfragrance.com @oddityfragrance
(*)납, 아연, 구리, 텅스텐을 생산할 때 부산물로 나오는 금속. 납과 비슷한 성질이지만 독성이 거의 없어 납의 대체 금속으로 많이 활용된다.
론칭 직후 공개한 포고의 전체 제품 라인업.
포고의 핸드 워시 제품들.
종이 봉투를 개봉해 핸드 워시를 제조하는 과정.
지구를 위한 궁극의 단순함
포고
“우리는 사람, 기업, 지구의 삶을 개선할 잠재력이 있는 프로젝트에 착수하기로 했다.” 지난해 스톡홀름 디자인 위크에서 스웨덴의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 ‘폼 어스 위드 러브Form Us with Love’의 공동 대표 욘 뢰프그렌John Löfgren이 남긴 말이다. 2020년 팬데믹 시대에 발맞춰 설립한 퍼스널 케어 브랜드 포고Forgo를 보면 그의 말이 허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패스트 컴퍼니〉 〈월 페이퍼〉 등이 주목한 이 브랜드의 특징은 지속 가능성을 향한 치밀한 고민의 결과로 탄생한 지극히 심플한 디자인이다. 형태, 소재, 그래픽 등 그 어떤 부분에도 장식적인 기교가 들어가지 않았다. 원통형 용기 상단에 간결하게 적힌 로고만 존재할 뿐이다.
제품 구성도 단출하기 그지없다. 세정제 분말이 담긴 종이 봉투와 핸드 워시용 유리 용기, 스테인리스로 제작한 보디 워시용 용기가 전부다. 사용 방법 또한 간단한데, 주문 후 종이 봉투와 함께 빈 용기가 배송되면, 봉투에 담긴 분말을 용기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 녹이면 된다. 포고의 저탄소 행보는 제작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포르투갈의 유리 작업장과 협업해 재활용 유리 중 40%가량을 핸드 워시 용기 제작에 사용한다. 폐지 90%와 나무 펄프 10%로 이루어진 종이 봉투는 별도의 코팅 작업을 거치지 않아 빠르게 분해된다. 온갖 그린 워싱 마케팅이 난무하는 요즘, 포고는 디자인마저 상당 부분 포기하며 지구를 지키겠다는 메시지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극도로 절제된 디자인에도 세계적인 유력 매체들이 기대의 시선을 놓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forgo.se @forgoessentials
디폰데 ‘시그니처 오리진 100’.
디폰데 제품들.
미美를 향한 최적의 브랜드 경험 디자인
디폰데
플러스엑스는 2010년 설립 이래 자사의 디자인 역량을 반영한 브랜드를 꾸준히 론칭해왔다. 2020년 자회사 플러스그로스를 통해 출시한 스킨케어 브랜드 ‘디폰데’도 그중 하나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Slowly, but Surely)’를 슬로건으로 삼은 브랜드답게 디자인에도 이 메시지가 반영되었다. 디자이너는 슬로건에서 연상되는 견고하고 깊은 이미지를 함축할 모티브로 동양의 백자를 선택했고, 패키지 디자인 과정에서는 불필요한 장식 요소를 최대한 배제해 디폰데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디폰데는 디테일한 브랜드 경험을 다방면으로 제공하기 위해 마케팅 측면에서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공식 웹사이트에 구현한 온라인 쇼룸도 그중 하나다. 백색 사막 한가운데 놓인 제품을 닮은 건축물 안에서 초자연적 조형물을 감상함으로써 브랜드 정체성을 은유적으로 학습하도록 했다. 브랜드의 본질적 가치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타깃층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활용하는 플러스엑스의 역량이 발휘된 지점이다.
한편 일부 제품은 한국비건인증원으로부터 정식 비건 인증을 받았는데, 이를 용기와 패키지 디자인으로 표현했다. 예를 들어 디폰데 ‘시그니처 오리진 100’은 금속 스프링을 사용하지 않아 재활용 가능한 펌프, 콩기름으로 인쇄한 비코팅 포장재, 삼림 재조림 프로그램에 기여하는 종이 케이스 등을 통해 제품 곳곳에 지속 가능성을 향한 강한 의지를 반영했다. deeponde.com @deeponde.official
디폰데의 온라인 쇼룸.
플러스그로스 대표
이동환
“브랜드가 고객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최대한 세분화하고자 했다.”
브랜드 경험 디자인 기업으로서 뷰티 브랜드 기획에 어떻게 접근했나?
브랜드가 고객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최대한 세분화하고자 했다. 뷰티 브랜드 특성상 제품의 성능이 좋아야 한다는 것은 기본 전제다. 그 외에 소비자들이 제품을 발견하고 살펴보는 경험, 배송을 받는 과정, 패키지를 개봉하는 순간 등 모든 접점에서 긍정적인 인식이 생길 수 있도록 디테일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제품의 디자인 아이덴티티, 그리드 시스템 등 디자인적으로 브랜드 내에서 통일성을 이룰 수 있는 디자인 언어를 구축하고자 했다.
웹사이트 내에 온라인 쇼룸을 구현한 것이 흥미로웠다.
뷰티 브랜드가 제품만 만드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브랜드와 고객이 만날 수 있는 많은 접점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였다. 움직이는 가상 공간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고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었다. 현실에서도 공간의 힘은 강력하지 않나. 디지털 세계에서도 몰입감 있게 공간을 거니는 경험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 판단했다.
고객들의 반응 중 인상 깊은 피드백이 있다면?
화장대의 화장품을 다 정리하고 디폰데 제품 하나만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리뷰를 종종 접한다. 브랜드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내용이 현실에서 정확히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는 진정성 있는 브랜드로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디자인 전문 회사가 뷰티 브랜드를 운영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피드백에 귀 기울이는 게 정답이라 생각한다. 디자이너가 작업물 퀄리티에 자신 있다고 해서 고객도 만족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업 운영에 관해서는 생산 단가를 고려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비용 대비 최선의 디자인을 선택하고, 과도한 퀄리티를 추구하려다 되레 높은 단가를 선택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높은 단가는 결국 고객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디폰데의 온라인 쇼룸 입장하기
- 관중석에서 필드 위로 디자인 스튜디오의 뷰티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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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자리 잡는 브랜드는 좋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은 뷰티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브랜드의 이야기에서 핵심 가치를 발견해 구현하는 일이 바로 디자인 스튜디오의 일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들이 직접 뷰티 브랜드를 만든다면 어떨까? 필드 위의 플레이어가 되어 뷰티업계로 직접 나선 디자이너들이 만든 브랜드 4개를 만나보자.Share +바이라인 : 글 박종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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