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업계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천연 원료 중심의 그린 뷰티에서 제조·유통·폐기 전 과정을 고려한 클린 뷰티 시장 규모가 나날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소비자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제품 성분을 넘어 윤리적, 환경적, 사회적 영향력까지 고려해 제품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인식의 변화다. 소비자의 의식 있는 태도에 부응하듯 기업에서는 세련된 디자인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방식의 포장법과 패키지로 완성한 제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연구 개발 단계에서부터 클린 뷰티 항목을 측정하는 시스템을 진행하는 기업도 있다. 인체와 환경 모두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지 않는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탄생부터 소멸까지의 과정에서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도록 세심한 디자인이 필요한 때다. 여러 브랜드와 기업의 사례로 클린 뷰티 패키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살펴봤다.
다시 쓰는 이로움
한율의 경량 유리 용기
오늘날 ESG 경영은 기업의 주요 과업이 됐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매년 지속 가능 보고서를 발표하며 국제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하고 사회 구성원과 함께 탄소 절감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영국의 친환경 인증 기관 ‘카본 트러스트Carbon Trust’로부터 탄소·물 발자국 인증을 받은 제품과 비건 제품을 시장에 확대해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 확산을 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제품의 포장재 경량화와 재활용·바이오 소재 사용, 재활용 용이성 등을 고려해 제품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배출량을 줄이고 있다. 한율의 경량 유리 용기 채택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한율의 ‘어린쑥 수분진정 크림’의 용기를 플라스틱에서 유리로 변경하면서 중량을 최소화한 것이다. 사용 후 전용 리필 캡슐을 용기에 끼워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크림 용기를 설계한 것도 특징이다. 주성분인 쑥의 향기를 담아낸 듯 은은한 녹색빛이 감도는 용기 색상도 돋보인다.
브랜드를 구축하는 모든 과정이 디자인
하루하루원더
시각적인 조형미 이전에 논리적이고 탄탄한 이야기가 있어야 아름다움을 오래 지속할 수 있다. 디에프에스 컴퍼니가 선보이는 하루하루원더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처음 접하는 순간부터 구매하고 사용하는 모든 순간을 디자인 과정에 포함했다. 하루하루원더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우리의 매일’을 모티프로 한다. 브랜드명에도 매일을 소중히 다루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함께하며 매일 사용하는 스킨케어 제품인 만큼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자 하는 브랜드 철학을 반영했다.
자체 연구소를 설립해 제품 기획, 개발, 디자인 과정을 모두 내부에서 진행한 이유다. 자연에서 유래한 원료에 특허받은 발효 기술을 적용한 천연 화장품은 아이덴티티에 부합하는 디자인으로 경쟁력을 높였다. 하루하루원더 블랙라이스 라인의 용기는 주성분이자 핵심 콘셉트인 쌀알 모양을 모티프로 직관적이면서도 감각적인 패키지로 구현했다. 또 다른 제품인 쌀알 크림은 한 손에 잡히는 최적의 크기와 우아한 곡선을 강조해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용기 색상으로도 제품 성분과 콘셉트를 구분할 수 있도록 쌀알 크림 3종은 흑미의 자주색, 쌀눈의 아이보리색, 수분을 상징하는 아쿠아블루를 사용했다.
하루하루원더 패키지는 2020년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며 패키지 디자인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디에프에스 컴퍼니 대표이자 디자인 디렉터인 정재원은 “디자이너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공감하고 사용자가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모든 과정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브랜드 철학을 전한다. 하루하루원더는 뛰어난 성능의 제품과 소비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디자인, 시대의 흐름을 읽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소비자 중심의 브랜드 경험을 구축하고 있다.
달걀로 제안하는 리추얼 라이프
수퍼에그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달걀은 화장품의 주요 원료로 활용됐다. 기원전 600년경 중국의 장려화는 달걀흰자와 주색 분말을 섞어 얼굴에 발랐다고 전해진다. 또한 조선 시대 여성 생활 백서인 〈규합총서〉에는 아녀자들이 옥처럼 빛나는 피부로 가꾸기 위해 청주에 달걀을 섞어 얼굴에 발랐다는 기록이 있다. 수퍼에그는 피부에 유효한 달걀의 영양학적 가치에 주목한 비건 스킨케어 브랜드다. 뉴욕의 전문 에스테티션이자 바니스뉴욕 부사장을 지낸 에리카 최와 공동 대표이자 닥터자르트 US, AHC 등 여러 뷰티 브랜드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맡았던 김정훈이 뉴욕을 기반으로 설립했다.
수퍼에그는 고기능성 성분 공급, 공정 거래 실현 등 생산 단계에서 피부와 환경 모두에 이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 독자적 기술로 달걀의 영양소를 오직 식물 성분만으로 배합한 비건 제품을 선보인다. 주성분인 달걀노른자와 흰자, 난각막은 각각 비타민, 미네랄, 단백질 등 필수적인 영양분이 풍부해 피부 관리에 탁월하다. 이러한 성분을 암시하듯 수퍼에그의 세럼 크림은 달걀 껍데기를 연상시키는 희고 둥근 패키지로 완성했다. 달걀의 둥근 곡면이 연상되도록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수퍼에그는 2020년 미국, 2021년 캐나다, 2023년 일본에서 론칭했으며 내년에는 한국과 영국에도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수퍼에그의 김정훈 공동 대표는 “주요 4개국에 제품 디자인 관련 특허를 여럿 보유하고 있으나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브랜드 콘셉트와 디자인을 침해하는 사례가 있어서 자체적으로 디자인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심 중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전히 남아 있는 한국 시장의 어두운 일면이기도 하다. 한편 수퍼에그는 국제삼림관리협의회(FSC) 인증을 받은 포장용 상자와 친환경 재활용 플라스틱 수지(PCR), 재활용 유리 사용을 우선시하며, 리필 가능한 패키지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라보에이치의 종이 리필 팩
라보에이치의 종이 리필 팩
아모레퍼시픽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클린 뷰티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 쿠션 제품 최초로 재활용 플라스틱 50%를 적용한 헤라의 ‘스킨 래디언트 글로우 쿠션’이나 무색 용기와 PP 소재의 재활용 가능한 무색 용기와 세척 과정에서 탈착이 용이한 라벨을 활용한 마몽드의 ‘로즈워터 토너 클린버전’이 좋은 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으로 지난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무려 1080톤이나 감축했다. 플라스틱 대체제로 아모레퍼시픽이 주목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종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두피 스킨케어 솔루션 브랜드, 라보에이치의 지류 리필 팩을 선보였다.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 소재는 본품 대비 플라스틱 사용량을 90%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또한 ‘탈모증상완화 기능성 고체 샴푸바’를 출시해 플라스틱 용기 사용량을 줄이기도 했다.
제로스테이션을 향한 디자인 여정
아로마티카
포장에도 등급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제품을 상세히 보면 포장재마다 재질 정보와 등급이 표기되어 있다. 2019년 12월부터 시행된, 포장재의 재활용 용이성에 따라 ‘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 등 4개 기준으로 표시하는 재활용 등급제에 빠르게 대응한 브랜드 중 하나가 아로마티카다. 비건 뷰티를 실천해온 1세대 브랜드인 아로마티카는 투명 페트병을 수거하는 분리수거함을 만들고,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하는 등 뷰티업계의 지속 가능한 행보에 앞장서고 있다. 2021년에는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용기 디자인과 소재를 전면 리뉴얼했다. 100% 재활용 페트 용기를 제품에 적용한 것. 이는 석유에서 추출한 페트 대비 탄소 배출이 약 60% 저감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소비자들이 명확하게 분리배출 방법을 알 수 있도록 제품 패키지와 공식 몰에서 세부 가이드도 제공한다. 용기 소재에 대한 자세한 안내와 분리배출 가이드를 일러스트로 표시했다. 병에도, 상자에도 분리배출 가이드를 나타낸 그림과 설명이 빼곡하다. 이에 대해 아로마티카 제품 디자인팀은 “화장품 생산자로서 제품 사용 후 폐기 방법에 대해 정확히 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모든 제품의 라벨에 ‘수분리 라벨’을 적용해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