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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Nowhere, Now here 110년 만에 열린 땅에서
도시의 파빌리온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김사라 큐레이터는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최소한의 건축적 장치를 통해 공원과 광장의 새로운 층위를 탐색했다. 과거와 미래, 물질과 비물질,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넘나드는 6개의 파빌리온에서 우리는 도시, 건축, 자연, 예술, 사람 그리고 역사를 만날 수 있다.


김사라 다이아거날 써츠Diagonal Thoughts 대표 건축가이자 국민대학교 건축학부 겸임 교수다. 건축, 디자인, 사고를 매개로 프로젝트의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추상적인 아이디어와 그것을 구체화하는 물질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대표작으로 ‘가평작업실: 열린결말’(2023), ‘도시는 미술관’ 프로젝트 지명 공모 당선작 ‘파러웨이: 맨 메이드, 네이처 메이드’(2023),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지명 공모 당선작 ‘( )Function /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2021)가 있다.
“인간이 생활하는 터전은 자연물과 인공물로 이분화되는 것이 아니다. 현장프로젝트의 파빌리온은 도시와 자연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층위의 건축을 제안한다.”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을 화두로 서울의 100년 후에 관한 구체적 샘플을 제시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현장프로젝트는 이 주제를 어떻게 담았나?
올해 현장프로젝트가 특별한 점은 기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달리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열린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땅, 단절된 땅인 이곳은 지난가을 110년 만에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부지 자체가 실험적이었다. 현장프로젝트는 이곳에서 지난 100년의 기억을 되찾고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고자 했다. 도시적 맥락에 파빌리온이 개입할 때 사람들이 공원과 광장 그리고 그 너머를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비엔날레의 다른 전시가 실제적인 도시 유형을 제안한다면 현장프로젝트는 그보다 훨씬 국소적이며 사람의 스케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장성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는 프로젝트다. 열린송현녹지광장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했는가?
열린송현녹지광장은 조선 시대에 소나무 숲을 이뤘고 일제 강점기에 주거 지역이었으며 이후 미군이 점거하여 기지로 사용한 땅이다. 그 뒤 여러 기업이 소유하면서 약 70년 동안 빈 땅이었다.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흥미로운 점은 개방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도시 안에서 또다시 빈 형태라는 것이다. 사실 열린송현녹지광장은 지난가을부터 이미 공원으로, 그리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교차점으로 잘 활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땅에서 서울이 지나온 시간을 파노라마 뷰로 감상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인왕산을 멀리 내다보다가 뒤를 돌았을 때, 마치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처럼 발전한 도시의 단면이 한눈에 펼쳐진다. 이 극적인 무대를 우리가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공원이라는 것은 도심에 자연이 개입해 만들어진 결과물인데, 그 인공 자연 안에 또 다른 인공물이 개입할 때 사람들이 그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무언가를 제시하고자 했다.

각 파빌리온은 체험 공간인 동시에 비엔날레 부지의 내외부 동선을 안내한다. 이런 역할을 위해 각 건축물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궁금하다.
먼저 현장프로젝트가 열릴 장소가 공공 공간인 만큼 우연히 파빌리온을 지나거나 마주하는 사람들이 느낄 첫인상을 염두에 두었다. 열린송현녹지광장은 중앙의 큰 광장과 삼청동 혹은 경복궁과 맞닿아 있는 작은 포켓 공원들로 조성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중앙 광장에 쉽게 접근하는 것과 달리 원형 둘레길 주변부의 공원은 활용도가 떨어진다. 열린송현녹지광장이 도시와 공원 사이에서 버퍼 역할을 하는 셈이다. 또 이곳은 어디에서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따라 처음 바라보는 풍경이 달라진다. 광장이 한눈에 보이기도 하고, 서서히 만나게 되기도 한다. 경사진 땅의 지형을 고려해 위치에 따른 파빌리온의 성격과 그 안에서의 공간 경험, 그리고 파빌리온에 접근했을 때와 그곳에서 나왔을 때 만나게 될 풍경까지 치밀하게 계획한 이유다.

나아가 사람들이 좀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자세하게 공원을 접하도록 공간적 장치를 마련했다. 열린 공간을 넘어서 하나의 교점 역할을 하도록 각 파빌리온을 배치한 것이다. ‘체험적 노드’는 이런 맥락을 반영한 전시명이다. 현장프로젝트를 처음 본 관람객은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맞닥뜨리지만 이후 여러 차례 방문하면 어느 지점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알기에 관람객의 의도에 따라 쉼터로, 만남의 장소로, 또는 열린 광장의 적당히 그늘진 벤치로 활용할 수 있다. 관람객의 행위에 따라 기능이 재생산되는 것을 기대한다.




참여 작가는 어떤 기준으로 선별했나?
파빌리온은 줄곧 건축·예술적 실험 혹은 이벤트로 미술관이나 교외 지역에 설치하곤 했다. 이와 달리 현장프로젝트는 도심 한복판에서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만날 수 있기에 여느 파빌리온보다 더 큰 역할을 하길 바랐다. 일반 대중에게 파빌리온이 다소 어렵고,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는 영역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이것의 기능이 무엇인지, 왜 짓는 것인지 묻는 사람도 있을 테다. 그래서 파빌리온을 ‘도시를 쉽고 즐겁게 경험하도록 하는 어떤 장치’라고 상정한 뒤 가장 구축적이고 건축적인 작업을 하는 팀과 건축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좀 더 부드럽고 유연한 소재로 작업하는 팀을 찾았다.

또 건축가가 직접적으로 만지진 않지만 건축물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이를테면 빛이나 수증기처럼 비물질적 감각을 다루는 작가들을 선정했다. 각 파빌리온이 교점으로서 어떻게 기능할지, 기획자로서 또 건축가로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참여 작가를 떠올리기도 했다. 한편 이곳을 즐기러 온 시민들에게 파빌리온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그다지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송현동을 다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결과물을 의도했다. 공간을 점유한 파빌리온, 어딘가 숨어 있는 파빌리온, 가구처럼 경험할 수 있는 파빌리온 등 다양한 매체와 유형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폐기물 없는 건축 비엔날레’를 목표로 조립, 이동, 해체가 용이한 전시 디자인을 지향한다. 현장프로젝트의 참여 작가들은 이를 어떻게 구현하는가?
파빌리온의 한시적 설치와 폐기,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지켜보며 지나치게 소모적이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번 현장프로젝트 참여작은 모두 비엔날레 이후 다른 장소에 재배치된다. 프랭크 바코와 살라자르 세케로 메디나의 ‘아웃도어 룸’은 다이아거날 써츠가 우음도에 설치한 ‘Faraway: Man Made, Nature Made’의 자재를 해체해 재사용했는데 비엔날레 폐막 이후 해남 땅끝마을로 옮겨갈 예정이다. 서울과 물리적으로 떨어진 장소까지 현장프로젝트의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페소 본 에릭사우센의 작품은 경기도 지역의 공원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페어 파빌리온’이라는 작품명처럼, 이곳에서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주되어 서로 다른 시공간의 작업이 한 쌍을 이루게 될 것이다.

참여작들이 현대 도시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확장될 수 있을까?
이번 비엔날레에서 반복적으로 말하듯 서울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도시가 아니다. 계획하에 지정학적 위치를 정한 도시다. 서울의 물길, 산길, 바람길을 복원하고자 하는 이유다. 이처럼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서울의 100년 후를 떠올릴 때, 인간이 생활하는 터전을 더 이상 자연과 도시 혹은 자연물과 인공물로 이분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활용하는 동시에 회복해야 하기에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나무를 심고 공원을 만들어 녹지를 확충할 것이 아니라, 도심의 숲속에도 여러 인프라를 잘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현장프로젝트는 작가의 선언을 담은 파빌리온과 어떤 쓸모를 담은 건축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도시와 자연이 만날 수 있고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층위를 제안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장프로젝트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주제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체험형 전시다. 특별히 기대한 전시 경험이 있다면?
열린송현녹지광장의 집단 기억이 형성되는 것. 이번 현장프로젝트는 100년 전 송현동의 모습을 지금의 서울, 또 미래의 서울과 만나게 하는 전시다. 100년 동안 기억이 단절된 이 땅을 많은 사람이 다시 밟으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기획자로서도 건축가로서도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다. 전시 기간 이후 소멸하는 작품이 아닌, 건축적 스케일로 도시에 개입하는 장치라고 생각하며 경험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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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정인호 기자 인물 사진 신동훈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