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성, 〈마지막 포옹〉
윤석원, 〈Light And Matter_Space 005〉
두괄식과 미괄식 가운데 어떤 구성을 선호하는가? 오는 9월 14일 한옥 갤러리 지우헌에서 열리는 2인전 〈어저께의 나머지에 오늘을 붙여〉는 개괄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작품을 번갈아 배치해 관객이 작품 간의 연결 지점을 스스로 찾도록 유도한다. 정해진 가이드를 따르지 않고 감상자가 직접 병치된 작품 간의 관계를 해석하도록 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대상 너머의 장면을 상상하는 것도 이번 전시의 큰 묘미다. 전시를 기획한 지우헌의 김아름 큐레이터는 “작가의 눈으로 기민하게 포착한 일상 속 풍경에 관객의 시선이 동화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전했다. 전시 작품을 찬찬히 살피는 시간은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라기보다 자신만의 개요를 만드는 여정에 가깝다.
박현성, 〈무제〉
박현성, K.a.L No.62
관계의 양상을 시각화한 박현성
박현성 작가는 변수로 인한 대상의 변화를 탁월하게 활용한다. 설치 작업이나 퍼포먼스는 그의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요소다. 이번 전시는 10여 년간의 독일 유학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귀국한 그의 작품을 국내에서 처음 공개하는 자리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작년에 뮌헨에서 선보인 〈마지막 포옹(The Last Hug)〉과 〈우연의 무게(Weight of the Coincidence)〉를 변주한 신작을 새롭게 작업했다. 특히 〈마지막 포옹〉은 하얀 천을 검은 물감으로 적신 후 캔버스 프레임 안과 밖을 뜨개질하듯 엮거나 늘어뜨려 천의 성질인 유연성을 다채롭게 활용한 작품이다.
박현성은 “천을 염색하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양면이 동시에 똑같이 염색된다는 점”이라며 “우연적, 우발적인 상황에서 염료가 정직하게 스며드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재료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연구와 실험의 흔적은 전시 공간에도 묻어날 것이다. 꽈배기처럼 꼬인 천과 위태롭게 놓인 각목이 낯선 조화를 이루며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이와 함께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는 평면 작품도 함께 소개할 예정이다. 작가는 “무거워 보이는 이 거대한 매듭은 사실 아주 가볍다. 관계라는 것은 비울수록 더 꽉 매듭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박현성의 작업은 우리의 삶을 투영한다. 이번 전시를 감상하며 관계에 대한 양상을 두루 살피고 자신을 비추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윤석원, 〈기다림-위〉
윤석원, 〈기다림-아래〉
사유와 해석을 유도하는 윤석원
‘생성과 소멸’이라는 주제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회화 작가 윤석원은 대비되는 성질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는 특정 순간에 관한 심상을 캔버스에 옮기곤 하는데 화려한 풍경보다 생의 주기를 마치고 죽어가는 마른 식물이나 전쟁 중 종전을 고대하는 청년의 표정처럼 조금 투박하고 모자라서 마음 쓰이는 장면에 더 마음이 동한다. 이번에 전시하는 두 작품 〈기다림-위〉 〈기다림- 아래〉는 판문점이 생기기 전 개성의 휴전 협정 장소에서 협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운전병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기록한 사진을 보고 그렸다. “오랜 전쟁 중에도 이런 표정을 지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려주며 사유의 시간을 제공하고자 했다”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윤석원의 작업 소재는 단지 ‘대상 자체’를 넘어 ‘대상이 처한 상황과 배경’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완성된다. 대립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존재함으로써 불가결한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 그의 화두인 셈.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보다 작품 너머의 무언가를 상상해보면 작품을 좀 더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작가가 활동한 이래 시도한 다양한 작품군을 망라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의 대표 시리즈인 ‘빛과 물질’, ‘No Man’s Land’, ‘차경借景’, ‘Dry Plant’의 신작들을 최초 공개하는 자리로, 작가의 궤적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특정 시대와 상황의 맥락을 회화로 풀어내는 윤석원과 눈에 드러나지 않는 관계를 다양한 매체로 다루는 박현성의 작업은 전시 공간에서 함께 여백을 메우며 완결성을 가진다.
〈어저께의 나머지에 오늘을 붙여〉
기간 9월 14일~10월 21일
장소 갤러리 지우헌(서울시 종로구 북촌로11라길 13) @jiwooheon_dh
참여 작가 박현성, 윤석원
자료 제공 갤러리 지우헌
- 갤러리 지우헌 <어저께의 나머지에 오늘을 붙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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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대한 시선을 끌어내는 작가 박현성, 윤석원의 2인전이 갤러리 지우헌에서 열린다. 추상과 구상, 평면과 입체, 회화와 설치 작업이 교차하며 내는 시너지를 엿볼 수 있는 자리다.Share +바이라인 : 글 김세음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