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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그들 각자의 영화관 가구는 증명하고 설명하고 연기한다
배우를 감싸고 있는 공간과 가구, 일종의 소품이 된 개로부터 그 사람의 지위와 성격을 충분히 인지하게 된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라는 일본 영화는 라디오 드라마 방송의 우여곡절을 다룬다. 드라마 PD가 처음으로 작가를 해보는 사람에게 라디오의 매력을 설명한다. 라디오에서는 “이곳이 우주다”라고 말만 하면 우주가 된다는 것이다. 언어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라디오는 문학에 가깝다. 시각적인 상황을 언어로 말하면 그만이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나는 영화 미디어가 갖는 특성을 더욱 명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영화는 라디오와 문학이 언어로 묘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을 손으로 잡을 수 있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질로 증명해야 한다. 라디오에서 하는 상황의 묘사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진다. 말은 증발하기 마련이다. 청자는 성우가 말로 하는 연기에 빠져든다. 반면에 영화에서 물질로 증명한 무대는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객의 시각에 노출된다. 관객이 배우의 연기와 대사에 집중하더라도 그의 배경에는 많은 사물이 널려 있어서 관객은 그러한 배경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올 더 머니〉는 미국의 석유 재벌 폴 게티 집안의 유괴 사건을 다룬다. 영화 초반부에 폴 게티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묘사하려고 〈플레이보이〉지가 폴 게티를 인터뷰하는 장면을 삽입한다. 그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진다. 대재벌다운 풍모를 지닌 게티는 바로크 양식 의자에 근엄하게 앉아 있다. 그 뒤로는 길다란 갤러리가 펼쳐져 있다. 갤러리는 유럽 귀족의 대저택에서 복도에 해당한다. 손님에게 가장 쉽게, 또 많이 노출되는 이 공간은 비싼 가구와 유화, 조각을 전시하여 집안의 재력을 과시하는 기능을 한다. 〈올 더 머니〉는 폴 게티가 앉은 의자 뒤로 갤러리 공간의 깊이를 포착함으로써 그가 얼마나 부자인지 시각적으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영화는 16 대 9 비율이어서 그런 공간의 깊이가 더욱 강조된다. 동시에 게티는 의자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애완견 셰퍼드를 쓰다듬고 있다. 셰퍼드는 과거 권좌의 손잡이에 달려 있는 맹수의 머리에 해당한다. 권좌는 늘 그곳에 앉은 사람을 보호한다는 상징적 의미로 손잡이 끝에 맹수의 머리를 조각해 넣었다. 영화에서는 조각이 아니라 실제 짐승, 사나운 셰퍼드를 옆에 둔 것이다.

물론 관객은 내가 설명한 것처럼 분석적으로 감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배우를 감싸고 있는 공간과 가구, 일종의 소품이 된 개로부터 그 사람의 지위와 성격을 충분히 인지하게 된다. 소품의 선택은 일종의 캐스팅이다. 영화 제작자는 캐릭터에 가장 적합한 배우를 찾으려고 애쓴다. 〈기생충〉에서 부자 사장으로 이선균을, 가난하고 무능한 아버지로 송강호를 캐스팅한 것은 그것이 적절하다고 본 것이리라. 그 반대였다면 부적절했을 것 같다.

〈내부자들〉에서는 재벌 회장과 보수적인 신문사 주필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회장은 로코코 양식의 넓은 베르제에 앉아 있다. 베르제는 등받이가 팔걸이 부분까지 이어진 고급 의자다. 게다가 두 사람이 앉아도 될 정도로 좌석이 여유롭다. 회장은 몸을 삐딱하게 옆으로 눕다시피 하고있다. 이 자세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상대방 앞에서 이렇게 건방진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회장은 신문사의 강력한 광고주이므로 신문사 주필을 통제한다. 반면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주필은, 물론 유력 신문사 주필이라는 자리도 대단한 권력이지만, 그의 월급을 보장해주는 광고주 앞에서는 찌그러져야 하는 신세다. 그가 앉은 의자는 폭이 아주 좁아서 그의 자세는 저절로 공손해지고 만다. 마치 선생님 앞에 앉은 학생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운 바른 자세로 앉아 두 손을 다소곳이 배에 가져다 놓았다. 이 자세는 폭이 좁은 의자가 만들어준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가구는 배우의 연기를 돕기도 한다.

〈소공녀〉는 가난한 가사 도우미의 일상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 가사 도우미는 방을 구할 돈도 없어서 대학 때 활동한 밴드 멤버들의 집을 전전한다. 한번은 부잣집에 시집간 멤버 집에서 신세를 진다. 솔직한 주인공의 말에 상처를 받은 부자 친구가 주인공과 식탁에서 대화를 한다. 부잣집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길고 큰 식탁이다. 이때 가난한 주인공과 부자 친구는 긴 식탁의 양 끝에 각각 앉아 있다. 주인공이 부자 친구에게 “왜 이렇게 멀리 앉아?”라고 묻자 친구는 “우리 신랑이랑 이렇게 앉아 버릇했더니”라고 대답한다. 물리적으로 멀면 심리적으로도 먼 것이다. 이 대답은 부자 친구가 신랑과 서먹서먹한 관계라는 것을 증명한다.

부자 친구는 가난한 친구와 멀리 앉음으로써 이제 친구와도 멀어지겠다는 심리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 상황에서 식탁은 마치 그들의 불편해진 관계를 설명하는 내레이터 같은 역할을 한다. 영화나드라마에서 출연자가 아닌 내레이터의 설명은 구태의연한 것이다. 시각 미디어로서 이야기의 배경 상황과 캐릭터들의 관계 따위를 오직 시각 이미지로 설득하는 것이 ‘영화답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간접적인 내레이터로 가구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영화에서 가구는 보조 연기자이자 내레이터인 것이다.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한 뒤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디자인 관련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먹고산다. 지은 책으로 〈고마워 디자인〉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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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김신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2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