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은 어떻게 내 지갑을 털었는가! 첫 앨범을 샀던 기억과 함께 영영 묻어버리고 싶은 흑역사도 하나 떠올랐는데(정말 공개하고 싶지 않지만 이 글의 주제와 밀접하므로 어쩔 수 없다), 나는 매일 잠들기 전에 오빠들에게, 정확히 말하자면 침대 옆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 굿나잇 키스를 해주었고 그 모습을 엄마에게 들키고야 말았다. 엄마의 한마디, “포스터가 코팅된 거라 다행이네.”
그래서 결심했다. 가짜 말고 진짜 오빠(**)를 만나야겠다고.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닿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오빠의 손을 바라보았는데도. 분명 말캉하고 보드라웠던 것 같은데, 영상을 너무 많이 본 탓인가? 경험하지 않았던 감각이 손끝에 전해온다. 오빠와 가장 가까웠던 게 티케팅에 성공한 콘서트에서 두 번째 줄에 섰을 때였나, 새벽부터 학교 땡땡이치고 간 공개방송 퇴근길이었나. 길었던 덕질 기간 동안 그 정도의 거리가 나에게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다.
사랑하니까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 건 당연한 욕망이다. 케이팝 산업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거리감을 좁히는 방법을 소비하도록 만들었다. 팬 사인회, 팬 미팅, 음악 방송, 콘서트 등 아이돌과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에서 비교적 시간과 돈이 적게 드는 콘서트를 예로 들어보면 2019년 연간 티켓 판매 1위부터 10위까지의 콘서트 평균 티켓 가격은 11만 9800원이고 국내 4대 기획사(하이브, JYP, SM, YG)의 2019년 콘서트 매출은 3395억 원이었다. 이는 엔터테인먼트사 전체 매출의 약 15 ~30%를 차지한다. 거리감을 볼모 삼아 순조롭게 나의 지갑을 털던 케이팝 산업은 팬데믹으로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리고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물리적’으로 거리감을 조절할 수 없었던 이 시기의 변화다.
2020년 SM엔터테인먼트는 발 빠르게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초 온라인 유료 공연을 론칭했고, AR과 3D 그래픽을 활용한 무대 연출 등 새로운 변화를 알렸다. ‘비욘드 라이브’가 기술적 선점에 가까웠다면, 같은 해에 있었던 BTS의 〈MAP OF THE SOUL ON:E〉은 온라인 콘서트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고 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 가까워질 수 없는 상황에서 거리감을 조절하는 방법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 콘서트에선 화질과 화면 수에 따라 티켓 가격이 매겨졌다. HD 화질로 한 화면만 볼 수 있는 일반 티켓과 4K 화질로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멤버십 전용 티켓을 비교하면 약 1.5배의 가격 차이가 발생했다. 무대와 가까운 순서가 아닌 더 촘촘한 화소, 다양한 각도가 새로운 척도가 된 것이다.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지금, 온라인 콘서트는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온라인 콘서트가 엔터테인먼트사의 새로운 수익 모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팬데믹 시기를 통과하며 케이팝 팬덤이 비대면 접촉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온라인 콘서트 경험자 547명 중 55.8%가 코로나19가 안정 및 종료될 경우에도 온라인 콘서트를 보겠다고 응답했고, 2021년 설문에서는 393명 중 56.7%가 유료 결제를 하더라도 온라인 콘서트를 보겠다고 응답했다. 비단 콘서트만이 아니다. 팬 사인회는 영상통화가 되고, 목소리는 텍스트가 되었다. 세로와 가로 화면에서 볼거리가 넘쳐나서 일 년에 몇번 못 가는 콘서트나 어차피 갈 수도 없는 팬 사인회가 어떻게 바뀌든 상관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진짜 오빠를 찾아 헤맸던 나의 과거는 한물간 것이 되었고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망은 더 이상 물리적인 접촉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개인의 노력은 팬과 아이돌 사이에 자리 잡은 미디어 장치에 의해 뒤로 밀려나고, 엔터테인먼트사는 실제와 가상을 나누는 경계 자체가 낡은 것이라 말한다. 이제 아이돌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속삭이면서.
오늘날 케이팝 시장을 선도하는 하이브는 작년 11월,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아티스트 IP를 활용한 게임, AI 음성 합성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AI 음성 합성에 대한 팬덤의 거부감은 한 차례 증명되었으니 안전한 길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받는 버블(***)이 사실은 인공지능 챗봇이 쓴 것이라면? 난 굿나잇 키스 포스터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걸까?
“근데 이번엔 진짜야.” 두꺼워진 미디어 사이로도 서로의 진짜를 알아보는 찰나가 있었다고. 그리고 그 순간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을 것이기에 SM(*)은 내 지갑을 털었고, 털고 있고, 앞으로도 털 것이다.
(*) 제목과 글에 나오는 SM(*)은 대형 기획사를 대표하는 의미로 사용했다. 매출 순위나 시총이 아닌 필자의 개인적인 기준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밝힌다.
(**) ‘오빠’라는 명칭은 때로 언니로, 동생, 또 다른 오빠로도 바뀌었으나 편의상 오빠로 통일한다
(***) 버블(Dear U bubble)은 아이돌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낼 수 있는 구독형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이다.
기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현상에 주목한다. 새로운 기술이 예술 개념을 어떻게 바꾸는지 관심을 두고 인공지능 창작물의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논문을 작성했으며 미디어의 이면을 탐색하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현재는 코리아나미술관 *c-lab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며 ‘기후 위기 시대를 위한 예술의 충분조건’(2022), 전시 〈칼립소Καλυψώ〉(2022), 〈우리가 세계를 오해했을지라도〉(2020)를 공동 기획했다. 저서로는 〈아이돌로직 신드롬〉(2021, 공저), 〈특이점의 예술〉(2019) 등이 있다.
참고 한국콘텐츠진흥원, 2020-2021 음악산업백서 토스증권, ‘콘서트도 못 하는데 4대 기획사 실적이 좋은 이유’, 2021년 6월 18일
- K-pop Essay Mix 3 SM은 어떻게 내 지갑을 털었는가, 터는가, 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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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처음으로 샀던 앨범이 뭐였는지 기억하세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전문 매장도 아닌 홈플러스 음반 코너에서 엄마 눈치 보며 샀던 앨범 한 장, 2004년 6월에 발매된 동방신기의 싱글 2집 〈The Way U Are〉이다. 내가 미래에 쓸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지만, 밤잠 설치며 큰 결심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어린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니 나에겐 이 제목을 쓸 권리가 있다.”Share +바이라인 : 글 최선주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