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1992)
〈Post〉(1995)
〈Homogenic〉(1997)
국적, 나이, 관심사 불문하고 비요크Björk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음악인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미술, 패션계에서도 그 이름은 익숙하며 배우이자 사회·환경 운동가로도 적지 않게 알려져 있다. 창작의 영역을 허무는 예술인이나 자신의 영향력으로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조명을 집중시키는 이는 물론 많다. 그럼에도 비요크는 유일한 존재다. 그 누구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펼쳐나가고 있다. 2023년 첫 MoR 기사로 비요크는 적절하다고 본다. 서서히 팬데믹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이 출발하는 첫해, 안개가 걷히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음악뿐 아니라, 덩달아 대중문화 전반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는 비요크, 한결같이 자기 뚝심으로 인생을 사는 비요크를 복습하는 것은 의미 있다.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난 비요크는 일찍이 음악에 뛰어들었다.
10대에 펑크 밴드를 결성해 로컬에서 활동하다가 1990년대 초 슈가큐브(Sugarcube)라는 전자음악 밴드의 보컬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밴드 해체와 함께 곧바로 솔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대개 이런 경로에 접어든 여느 가수들과 반대로 더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데뷔 앨범 〈Debut〉(1992)부터 작년에 발표한 열 번째 정규 앨범 〈Fossora〉(2022), 그 외에도 수많은 싱글, 리믹스, 공연 앨범까지 무려 40년에 걸쳐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거기에 더해 60개 이상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2000)와 그리스 올림픽 개막식 공연 당시 배우자였던 실험 미술 거장 매슈 바니Matthew Barney의 영상 속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며(영상 속 음악의 작곡도 당연히 비요크가 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인전을 가졌고(비록 피상적인 산업 전시로 기억될지라도), 이 외에도 다큐멘터리 제작, VR, 게임 디자인 등 손대지 않은 매체가 없을 정도로 광대한 범위의 활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음악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만약 비요크의 세 번째 정규 앨범 〈Vespertine〉을 좋아했다면 이후의 앨범들까지 좋아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4집 〈Medúlla〉는 아카펠라 앨범으로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음악적 방향을 보여준다. 아카펠라라고 해서 아름다운 화음을 기대했다면 큰 오산이다. 원주민 배음 창법(throat singing, 후두, 인두 등 목청에서 만들어지는 공명을 조절해 노래하는 창법)으로 노래하는 타냐 타가크Tanya Tagaq, 힙합 그룹 루츠Roots의 비트박서 라젤Rahzel, 헤비메탈 그룹 페이스 노 모어Faith No More의 보컬 마이크 패튼Mike Patton(괴성으로 유명하다)이 비요크와 함께 스튜디오에 들어가 다른 악기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만든 앨범이다. 보통 가수들, 이를테면 라디오헤드 같은 ‘평범한’ 밴드들은 이 정도로 일생일대의 실험적인 앨범으로 남기고 멈췄겠지만, 비요크는 이후의 앨범들에서 음악과 창작, 덩달아 실험의 경계를 더욱 확장시켰다.
〈Vespertine〉(2001)
〈Medúlla〉(2004)
〈Volta〉(2007)
MoR은 언젠가 뮤직비디오 거장 감독들에 대해 지면에서 다뤘다 (월간 〈디자인〉 2022년 10월호 ‘뮤직비디오의 잊힌 전성기와 3명의 거장’). 그때 언급한 크리스 커닝햄 Chris Cunningham,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는 저마다 독특한 기법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데 각기 다른 장르의 음악을 대표하는 세 감독과 모두 작업할 수 있는 뮤지션이 바로 비요크였다. 크리스 커닝햄과는 MoMA 영구 소장품이기도 한 1999년의 〈All Is Full of Love〉 뮤직비디오를 함께 작업하며 파격적인 로봇 간의 섹스 신에 등장한 비요크, 스파이즈 존즈 감독이 연출한 〈It’s Oh So Quiet〉에서 한 편의 뮤지컬처럼 뉴욕 시내 한복판을 활보하며 세탁소, 음식점, 골목을 누비던 비요크, 미셸 공드리 감독의 〈Army of One〉에서 근미래 디스토피아 속에서 탱크를 몰며 질주하던 비요크. 세 비요크가 모두 같은 인물임을 상기하길 바란다.
이는 감독의 뛰어난 비전과 연출력 또한 무시할 수 없지만 역시 비요크가 그 중심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토록 다양하며 완성도 높은 뮤직비디오를 만든 음악인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도 마이클 잭슨 정도일 텐데, 그는 이미 스타로서 고지에 올라 비슷한 명성을 떨치는 연출가들과 거금을 들여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그것은 창작과 실험이라기보다는 홍보와 판매에 더 가까운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크리스 커닝햄, 스파이크 존즈, 미셸 공드리는 1990년대 당시 막 떠오르는 차세대 감독이었고, 비요크는 그 전에 이미 증명된 가수로 세 감독에게는 영광이었을 것이다.
비요크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패션이다. 영국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이 앨범 〈Homogenic〉(1997) 표지의 의상을 비요크와 함께 디자인했고 이후 맥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종종 함께 의상 작업을 이어갔다. 멀티미디어 콘셉트 앨범 〈Biophilia〉(2011)에 등장하는 의상도 이리스 반 헤르펜Iris Van Herpen이 함께 디자인했으나(앨범 디자인은 M/M Paris가 맡았다) 비요크가 유명 패션 디자이너를 필요로 하는 가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의도가 더 진솔하게 보이는 때가 많다. 〈Volta〉(2007), 〈Vulnicura〉(2015) 앨범의 이미지 속 의상만 봐도 알 수 있다.
〈Biophilia〉(2011)
〈Vulnicura〉(2015)
〈Utopia〉(2017)
〈Fossora〉(2022)
지금까지 비요크의 활동 중 극히 일부를 나열했는데, 모든 이야기를 하려면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폴리매스polymath’라는 단어를 아는가? 직역하면 ‘박식하다’ 정도겠지만 지식의 폭이나 깊이를 뜻한다기보다는 ‘분야를 넘나드는 해박함’이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인물이 과학, 미술, 건축 등의 분야에 남긴 업적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 명확하게 이해될 것이다.
21세기 ‘폴리매스’한 비요크는 창의와 창작의 제한 없음은 물론 음악, 미술, 영상, 테크놀로지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자신의 활동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신비로운 외모에 특유의 늘어뜨리는 창법, 아이슬란드 출신이지만 코즈모폴리턴에 가까운 삶, 다방면으로 펼치고 있는 창작 활동으로 비요크는 우리에게 지표를 던져주고 있다. 자신만의 뚝심으로 길을 걷는 건 지금 어느 때보다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지난 2~3년간 전 인류가 겪은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경제난, 양극화되는 세계 정세, 기후 위기의 징후, 인공지능의 창작 활동 등으로 점점 혼란해지는 시대에 비요크의 앨범을 들어보길 바란다. 그의 뮤직비디오, 실황 공연, 다큐멘터리, 아트 프로젝트도 추천한다.
MoR(Master of Reality)
블랙 사바스에서 만나 화이트 라이온에서 갈라진 록·메탈광들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황규철과 디자인 저술가 박경식이 결성한 프로젝트 동아리. 두 사람은 서울, 인천, 경기, 오사카, 교토, 도쿄, 토론토, LA, 베를린까지 바이널을 디깅하면서 나눈 음악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 유튜브에서 ‘MoR(엠오알)’을 검색하시오.
- MoR 비요크라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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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e +바이라인 : 글 MoR 담당 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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