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에서 2200번 버스를 타면 강변북로와 자유로를 거쳐 보통은 25분 만에 도착하는 파주는 어떻게 보면 서울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종종 심리적 거리는 이보다 크겠거니 짐작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파주는 별일 없으시죠?”라고 안부를 묻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그렇다. 별일이 없다고 해야 할지, 있다고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항상 대수롭지 않은 척 “네 그럼요”라고 답하게 되는데 이는 파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관점에 따라 그렇기도,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보면 이 글은 그 물음에 구구절절 답하기 어려워 미뤄뒀던 것에 슬쩍 답하는 것이기도 하다.
파주에 위치한 독립 교육기관 파티는 제도권 교육기관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각각 나름의 교육 목표를 가지고 작동하며, 주된 사용자인 학생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한시적 공동체로 머물다 떠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파티가 처한 상황이랄까, 어떤 조건은 제도권 교육기관과 다를 수 있겠다. 파티는 이제 막 10년을 넘어섰는데 사람으로 치면 갓 걸음마를 뗀 상태로 여러 방면에서 성장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선 물리적 공간이 그렇다. 유서 깊은 학교에 축적된 시간이 만들어내는 안정적 풍경과는 다르게 파주출판단지의 ‘이상 집’은 계속해서 모습을 바꿔나간다. 방학이 되면 사용성이 떨어지는 난로를 철거하거나 파주 지역의 추위를 견디기에 적절한 창호로 교체하는 등의 일이다.
규모 측면에서도 다른데 파티는 한배곳 4년 과정과 더배곳 2년 과정이 모두 채워진 시점부터 꾸준히 학생과 직원을 포함한 구성원 수 100명 내외의 작은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학년당 20명 정도의 규모는 구성원 간 내밀한 소통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동시에 과도한 양의 정보를 소화해야 하는 경우도 수반되기 마련이다. 또한 파티는 창립 때부터 ‘3無(무경쟁, 무권위, 무소유)’를 표방하고 있는데 이 중 무권위가 만들어낸 구성원 간 구도 변화가 야기하는 역동은 여전히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는 중이다.
이런저런 조건 속에서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은 역시 경제적 구조다. 창의적 교육을 꿈꾸는 것도 경제적 안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일 텐데 파티는 항상 재정적으로 그리 편안한 상태는 아니다. 등록금은 현장에 계신 유능한 선생님들을 모시거나 교육 공간과 설비를 운영하는 데 쓰기 급급한 게 현실이다 보니 수입을 다원화하는 노력은 필수적이다. 고맙게도 후원자들과 여러 외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구성원들의 노고, 연결된 네트워크에서 받는 보이지 않는 도움 덕에 어찌어찌 큰 탈 없이 교육 실험을 지속하는 중이다. 다만 언제까지 지금 파티를 지속 가능케 하는 것들이 유지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예측할 수 없이 요동치는 경제 상황, 끝없이 가속화되는 사회 변화, 광범위하게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끊임없이 재정의되는 디자인이라는 용어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파티의 운영진 중 한 사람으로서 막연함부터 느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파티는 2023년 햇수로 11년 차에 접어들었다. 시기적으로도 앞으로 다가올 10년을 위한 계획을 준비하고 2.0 버전으로 갱신해 가동해야 하는 때다. 앞서 나열한 파티의 조건을 볼 때, 결국 ‘생존’이 가장 명료하고 솔직한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변화가 불가피한 작은 규모의 내밀한 관계망은 어려운 조건임과 동시에 매력적인 점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을 활용 해 파티의 미래를 계획한다면 아직 모호한 말이지만 어떤 ‘생산 조직체’로서 교육기관의 모델을 꾀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네트워크의 허브로, 정보 생산자로, 미디어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교육기관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인데, 파티를 브랜드로 본다면 온라인, 오프라인의 축으로 각각의 정체성을 더 선명하게 갖추는 것이 목표다. 현실적인 면을 따져봐야겠지만 온·오프라인에 걸쳐 파티가 발행하는 어떤 문화적 콘텐츠의 매체로 식당이나 찻집, 편집숍, 나아가서는 호텔 등을 운영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펼쳐본다.
한배곳과 더배곳 모두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이런 설정에 어느 정도 연결되는 커리큘럼으로 재편하는 중이다. 한배곳은 새롭게 추가된 ‘모험유닛’이라는 과정을 통해 입체적인 경험과 리서치, 생산 과정을 고루 경험하며 그 과정과 생산한 콘텐츠를 발행하고 누적하는 것이 목표다. 더배곳은 작업자로서 자기 방법론을 발견하고 구축하는 데에서 출발해 ‘자기 작업의 굴레 안에 경제적 조건까지 포용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으로 구체화하는 중이다. 각 과정은 올여름에 합당한 규모와 형식을 취해 이런 목표점을 실험하는 한시적 공간을 운영할 예정이다.
파티가 언젠가 정말로 멋들어진 신장개업 포스터를 붙이고 식당이나 상점 또는 호텔을 열게 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다만 이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채 일하다가, 스튜디오에 깔 셈으로 당근마켓에서 ‘빈티지 페르시아 카펫’을 검색하거나, 학생들이 보호 중인 유기견을 쓰다듬거나, 다음 학기에 사용할 책상을 들고 계단을 오르거나, 수명이 다한 전구를 갈고 있을 때 도착하는 ‘별일 없냐’는 문자에는 글쎄, 쉽게 답장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국(서울)과 영국(런던) 소재 대학과 대학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2011년부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강의와 상업 활동을 겸해왔으며, 2018년부터 파주타이포그라피 배곳에 재직 중이다.
- 잃어버린 배움을 찾아서 파주는 별일 없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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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는 2023년 햇수로 11년 차에 접어들었다. 시기적으로도 앞으로 다가올 10년을 위한 계획을 준비하고 2.0 버전으로 갱신해 가동해야 하는 때다. 앞서 나열한 파티의 조건을 볼 때, 결국 ‘생존’이 가장 명료하고 솔직한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Share +바이라인 : 글 박찬신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