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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MoR 영혼의 단짝, 스탠리 돈우드와 톰 요크 그리고 라디오헤드


〈My Iron Lung〉(1994)

〈The Bends〉(1995)
1938년 미국 컬럼비아 레코드에 고용된 알렉스 스타인와이스Alex Steinweiss는 단순히 음반을 보호하는 패키지를 넘어 시각예술 작품으로서의 음반 커버를 탄생시켰다. 이후 앨범 커버는 한 뮤지션의 음악적 분위기와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으로 인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LP가 보급되자 앨범 아트워크는 더욱 발전하게 됐다. 1950년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재즈 음악은 블루 노트 레코드Blue Note Records를 필두로 바우하우스의 영향이 돋보이는, 미니멀하면서도 개성 있는 디자인의 앨범을 선보였다.

이어진 로큰롤 열풍과 본격적인 대중음악의 형성은 음반 커버가 현대 시각예술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는 데 일조했다. 이때부터 뮤지션과 앨범, 커버 아티스트가 함께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삼각형 프리즘으로 유명한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1973) 앨범과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 바나나 그림으로 유명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1967)와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 비틀스의 위대한 음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와 디자이너 피터 블레이크 등이 대표적이다. 뮤지션과 그래픽 아티스트의 협업이 음반의 ‘탄생’에 아주 중요한 작업이 되자 그래픽 아티스트가 한 뮤지션의 디스코그래피 전체를 담당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얼터너티브의 시대, 비주얼 디렉터 안톤 코르베인’(월간〈디자인〉 2022년 11월호)에서 언급했던 사진작가 겸 아트 디렉터 안톤 코르베인Anton Corbijn과 밴드 디페시 모드Depeche Mode도 그중 하나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2000년대 음반 대부분의 아트 디렉팅을 맡은 롭 셰리든Rob Sheridan도, 밴드 툴Tool의 기타리스트이자 모든 앨범의 아트 디렉터인 애덤 존스Adam Jones도 마찬가지. 그리고 밴드의 앨범 디자인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중요한 비주얼 아티스트가 또 한 명 있다. 바로 라디오헤드와 톰 요크의 앨범 아트 디렉터, 스탠리 돈우드Stanley Donwood다. 스탠리 돈우드는 라디오헤드의 데뷔 앨범 〈Pable Honey〉를 제외한 모든 음반의 아트 디렉팅을 맡았으며 밴드의 프런트맨 톰 요크의 솔로 음반과 그의 프로젝트 음반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19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인 라디오헤드의 모든 앨범 커버 디자인을 맡았음에도 (그리고 한국에서 라디오헤드의 인지도를 고려했을 때도) 비교적 알려진 바가 없다. 스탠리 돈우드는 1968년 영국 남부 에식스Essex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댄 릭우드Dan Rickwood지만 모든 작업에 스탠리 돈우드로 표기한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흥미를 느껴 엑서터 대학교(University of Exeter)에서 예술을 전공했고 그곳에서 톰 요크를 처음 만났다. 톰 요크는 1994년 라디오헤드의 두 번째 EP 앨범인 〈My Iron Lung〉의 커버를 의뢰한다. 당시만 해도 둘은 가깝지 않았고, 심지어 스탠리 돈우드는 록 음악도, 라디오헤드의 데뷔 앨범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2집 수록곡 ‘Just’가 맘에 들어 작업을 수락했다. 정규 앨범은 아니었지만 싱글로 발매된 〈My Iron Lung〉도 전작에 이어 ‘히트’한다.



〈OK Computer〉(1997)

〈Kid A〉(2000)
라디오헤드는 곧바로 정규 앨범 〈The Bends〉(1995) 제작에 착수하고 앨범 아트워크 또한 스탠리 돈우드에게 맡긴다. 톰 요크는 앨범 〈The Bends〉에도 ‘My Iron Lung’을 수록하고 싶어 했고, 이에 스탠리 돈우드가 실제 의료용 철제 폐 기관 장치에서 모티프를 얻어 앨범 작업을 하려 했다. 하지만 촬영을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병원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CPR용 마네킹이었다. 그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끌려 마네킹 얼굴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이를 브라운관에 띄운 후 그 이미지를 다시 촬영하는 방식으로 재가공해 앨범 커버를 만들었다.

이 앨범은 훗날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1997)와 더불어 1990년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앨범 중 하나로 꼽히며 앨범 커버 역시 가장 아이코닉한 디자인으로 알려졌다. 이후 역사적인 앨범 〈OK Computer〉에서 톰 요크는 현대 문명이 개인의 불안과 두려움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고, 스탠리 돈우드는 이를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와 사람의 실루엣, 타이포그래피를 중첩시켜 혼란스러운 이미지로 탄생시켰다. 〈OK Computer〉의 흥행은 라디오헤드를 공룡 밴드로 만들어버렸다. 미디어의 지나친 관심이 쏟아졌고, 소속 에이전시는 밴드에게 더욱 상업적인 성공을 요구했다. 특히 톰 요크가 겪은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당시 멤버들은 해체를 진지하게 고려했다. 하지만 진통을 겪은 밴드는 기존과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드는 것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당시 에이펙스 트윈의 음악을 듣고 있던 톰 요크는 새 앨범에 전자음악의 요소를 적극 차용하기로 결심한다. 기타는 창고 안에 처박아두고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건반악기를 꺼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훨씬 더 실험적이고 난해해진 그들의 네 번째 프로젝트 〈Kid A〉(2000)가 그렇게 탄생했다. 톰 요크는 ‘닥터 초크Dr. Tchock’란 예명을 사용해 〈Kid A〉의 앨범 아트워크에도 참여한다. 암울한 배경에 빙하가 녹는 듯한 이미지는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상징하는데, 스탠리 돈우드가 당시 유럽을 충격에 빠뜨렸던 코소보 전쟁과 환경문제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종말론적 스토리텔링을 앨범 커버에 담아냈다. 차가운 전자음악과 음울한 아트워크의 기조는 이듬해 발매한 〈Amnesiac〉(2001)에서도 이어진다.

검은색 배경에 새빨갛게 칠한 박스, 미궁 속에 빠진 미노타우로스(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은 인간, 반은 황소의 모습을 한 괴수)의 이미지는 마치 〈OK Computer〉의 성공 이후 우울증에 빠진 톰 요크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듯하다. 그리고 이 앨범은 스탠리 돈우드에게 첫 번째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레코딩 패키지Best Recording Package’ 부문 수상을 안겼다.



〈Amnesiac〉(2001)

〈In Rainbows〉(2007)
그로부터 2년 뒤 라디오헤드는 〈Hail to the Thief〉(2003)를 발매한다. 지난 2장의 앨범에 비해 덜 전통적이고 덜 암울하게 구성하되 전쟁과 우익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정치적 주제를 담았다. 앨범 커버는 라디오헤드의 녹음 스튜디오가 위치한 LA의 광고판, 톰 요크의 가사, 테러나 전쟁과 관련한 텍스트 등을 잘게 쪼갠 뒤 재배합하여마치 할리우드의 로드맵처럼 만들었다. 2007년 앨범 〈In Rainbows〉에서는 디지털 앨범과 실물 앨범 중 원하는 포맷을 선택해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스트리밍 사이트는커녕 디지털 앨범 자체가 흔하지 않았기에 이는 획기적인 실험이었다. 실물 앨범에는 디지털 앨범의 사진과 아트워크, 가사집이 담긴 CD와 45rpm 바이닐이 모두 포함되었다.

스탠리 돈우드는 이 앨범에서 NASA가 촬영한 우주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밀랍과 여러 물감을 주사기에 넣고 분사해 마치 잭슨 폴락처럼 추상성과 즉흥성을 기반으로 한 페인팅 기법으로 제작했다. 그 위에 앨범의 타이틀인 무지개가 연상되는 컬러로 이루어진 IN/RAINBOWS의 타이포그래피를 얹혀 완성했다.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스탠리 돈우드의 의도는 오로지 우주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앨범은 영국과 미국에서 곧바로 차트 1위를 휩쓸었고 지금까지도 라디오헤드의 후기 앨범 중 최고 걸작으로 평가된다. 또한 스탠리 돈우드는 실물 앨범인 디스크 박스 에디션으로 다시 한번 그래미(Best Boxed or Special Limited Edition Package 부문)에서 수상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여덟 번째 정규 앨범 〈The King of Limbs〉의 아트워크는 북유럽 동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음산한 나무들 사이에 그려 넣은 ‘이상한 다족류 생물’은 환경문제를 표현한 것으로 ‘야생’과 ‘돌연변이’라는 키워드를 담아 스탠리 돈우드가 작업했다. 음악과 가사의 아트워크가 긴밀히 연결된 ‘시각적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즈(Best Boxed or Special Limited Edition Package 부문)에서 다시 한번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2016년에 발매한 아홉 번째 정규 앨범 〈A Moon Shaped Pool〉에서도 아트워크 전반에 참여하며 라디오헤드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뮤지션과 아티스트가 거의 모든 작업을 공유하며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하나의 유기체처럼 아트워크와 음악의 결합에 공을 들인 사례는 극히 드물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톰 요크의 솔로프로젝트에서도 비주얼 디렉팅을 맡은 스탠리 돈우드는 그와 깊은 예술적 영감을 공유했다. 그 안에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했으며 밴드의 음악적 색깔이극단적으로 변화했을 때도 훌륭하게 대응했다. 이는 스탠리 돈우드가 아티스트로서 얼마나 깊고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준다. 앞으로도 라디오헤드, 스탠리 돈우드, 톰 요크의 동행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이 또 어떠한 음악과 아트워크로 대중의 영감을 불러일으킬지 기대해본다.




MoR(Master of Reality)
블랙 사바스에서 만나 화이트 라이온에서 갈라진 록·메탈광들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황규철과 디자인 저술가 박경식이 결성한 프로젝트 동아리. 두 사람은 서울, 인천, 경기, 오사카, 교토, 도쿄, 토론토, LA, 베를린까지 바이널을 디깅하면서 나눈 음악과 디자인에대한 이야기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유튜브에서 ‘MoR(엠오알)’을 검색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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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MoR 담당 박슬기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