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문신 文信 : 우주를 향하여〉(이하 〈문신〉)가 논란이 되는 모양이다. 전시 내용이 아닌 디자인이 그 원인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작 품을 압도하는 좌대의 날카롭고 복잡한 형상, 여러 질감과 색 감이 뒤섞인 공간과 디스플레이 디자인이 전시 관람에 방해 가 되었다는 문제 제기가 잇달았다. 국립 미술관에서 열린 현 대미술 전시라는 점, 작가의 작품 세계와 무관한 ‘과잉’된 장 치를 덧붙였다는 것이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물론 이와 다른 견해도 적지 않다. 한 명에게 주목하는 전시라 할지라도 전시 기획자의 해석과 의미 부여가 중요한 만큼 디자인의 적극적 인 개입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문신〉의 경우 잘 알려진 작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 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짐작건대 이 논란의 요체는 아마 전시 디자인의 차원을 넘어선 데 있을 것이다.
‘오늘날 포스트 화 이트 큐브 혹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전시의 역할은 무엇인가?’ 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과 닿아 있다는 말이다. 작품 자체를 온전히 감상하는 일만큼은 변하지 않아야 할지, 기존과 다른 전시 형식과 개념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지, 서로 다른 의 견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결이 다를지 모르나, 일련 의 문제는 전시의 새로운 역할을 논할 때마다 등장하는 ‘포스 트 뮤지엄’ 개념의 딜레마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주지하다 시피 동시대 미술관과 박물관에 과거보다 개방적이고 민주 적인 태도를 갖출 것을 주문한 박물관교육학자 에일린 후퍼 그린힐Eilean Hooper-Greenhill의 ‘포스트 뮤지엄post museum’ 개념이 현실에서는 종종 자본 친화적 활동을 정당 화하는 근거로 쓰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포스트 뮤지엄을 표 방한 기관들이 연예인을 앞세우거나, 뷰티 브랜드에 박물관 상표를 넘겨주며 논란을 일으킨 사례 등을 떠올려보아도 좋 겠다. 포스트 뮤지엄의 딜레마는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 민주적·공공적 방향성을 모색하는 일이 시장의 논리와 행태를 수용하는 것으로 이어져 결국 질적으로 저열해진다 는 점에서 발생한다. 이는 전시 디자인에서도 반복된다. 미술 관과 박물관이 ‘관람객 인식과 경험의 확장’이라는 목적을 내 세우며 디자인에 힘쓰는 모양새는 ‘공간 체험’을 매개로 작동 하는 상업 공간의 논리를 닮았다. ‘힙◦◦’, ‘핫◦◦’, ‘◦◦◦ 길’ 등으로 수식되는 장소의 범람, 이색적인 공간을 조성해 유명해진 백화점의 사례는 공간 경험 자체가 소비 대상이 된 최근 경향의 일부일 것이다.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이 상업 색 짙은 국제 디자인 공모전에 전시 프로젝트를 출품하는 관 행 역시 언급할 필요가 있다. 공공의 재원으로 열린 전시가 그 디자인만을 따로 떼어내 소비 산업의 맥락에서 작동하는 출품, 수상 메커니즘에 스스로의 성취를 종속시키려 하는 모 습은 초라하고 씁쓸하다. 게다가 수상 실적이 전시 기관의 명 성에 크게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행위가 누구를 위 한 것인지 근본적인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럼 에도 일련의 지적이 전시 디자인 전반이 무용하다는 이야기 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내용과 형식을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긍정적 효 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 의 주요 전시가 기획과 유기적으로 연동되며 명료해지고 세 련미를 갖추었으며 그럼으로써 전시 관람 전반의 쾌적함이 나 만족도가 향상된 면이 있다.
또 전시 디자인은 전시 형식 을 다변화하고 내용의 입체적 이해 가능성을 확장하는 순기 능도 있다. 특히 이러한 효과는 비 순수미술 장르를 위시한 아카이브 전시나,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물건들에 서사와 정 보를 부여해 재해석, 재배치하는 박물관 전시에서 더 유효하 게 작동할 여지가 있다. 이따금씩 지적되는 과잉의 사례를 경 계한다면 전시의 의도와 목적이 디자인을 통해 더 효과적으 로 실현될 수 있다. 2010년을 전후로 시작된 국공립 전시 기 관과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와의 협력 관계가 하나의 생태 계 혹은 문화적 관행을 만들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협업 의 범위는 공간·전시 그래픽 전반까지 확장되었고, 많은 디자 인 창작자들이 현재 이를 일감으로 삼고 있다. 외부 전문 인 력의 힘을 빌려 전시의 표현 능력과 전달력을 높인 점, 다양 한 디자인 스튜디오의 참여 기회를 늘린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전시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는 최근 경향의 이면에는 오늘날 전시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와 같은 근본적 질문을 포함해 더 깊게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있다. 쉽게 판 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현상을 마주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긍정과 부정 대신 현상의 명암을 충실히 살펴보려 애쓰는 일일 것이다. 전시 디자인의 효과나 전시 디자이너의 창의 성을 신성시하거나 찬양하지 않고, 그렇다고 평가절하하거 나 기각하지도 않는 건조한 태도. 그것이 전시 디자인에도, 그 현상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최호랑 디자인 역사·문화 연구자로 한국의 근현대 및 동시대 디자인과 시각 문화에 대한 연구·비평·기획 활동에 참여하며 강의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디자인역사문화전공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문화/과학〉, 비평 웹진 〈퐁〉 등에 글을 썼으며 디자인 컬렉티브 ‘워크플레이WorkPlay’ 소속으로 지난 3월 전시 〈Bending/구부림〉을 공동 기획했다. 현재 홍익대학교 디자인컨버전스학부 겸임 교수이다.
- 분터카머 톺아보기 포스트 뮤지엄 시대의 디자인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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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디자인의 효과나 전시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신성시하거나 찬양하지 않고, 그렇다고 평가절하하거나 기각하지도 않는 건조한 태도. 그것이 전시 디자인에도, 그 현상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인 것 같다.Share +바이라인 : 글 최호랑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