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도면에 관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이제껏 미술사학이나 큐레토리얼curatorial 연구에서 전시 도면(floor plan)에 대한 적절한 조명은 없었다. 크게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전시가 할 말을 다 한다는 일종의 신화 때문이다. 전시 기관이나 공간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전시된 작품, 작가, 전시가 따로 또 복합적으로 한다고 여겨진다. 사회학자이자 박물관 연구자인 토니 베넷Tony Bennet이 말한 ‘전시 복합체(exhibitionary complex)’라는 표현이 얼마나 적절한지 공감할 수밖에 없다. 전시가 말하고 보여주므로 다른 것들은 잠시 물러서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을 보여주는 전시 매체의 특성상 전시는 과정보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점이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큐레토리얼과 뮤제올로지museology 측면에서도 전시 만들기 과정 자체에 접근하는 연구가 많지 않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를 비롯한 많은 큐레이터가 전시에 관한 경험담을 이야기하지만, 대부분 전시 완성 이후의 장면 위주로 언급할 뿐 ‘전시’라는 매체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 대한 논의는 드물다. 그렇다면 전시 도면은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하는 것일까? 많은 큐레이터들이 말하는 것처럼 전시가 완성된 이후 작품, 작가, 공간이 충분히 말을 하는데 말이다.
〈전시의 만들기와 전시의 기록으로서의 ‘전시 도면’ 연구〉라는 논문에서 나는 큐레이터의 관점에서 미술 전시 도면을 연구 대상으로 다뤘다. 전시 도면을 연구하는 방법에서 가장 고 민했던 지점은 ‘도면은 언제 존재하는가’였다. 전시 도면은 작가, 큐레이터, 공간 디자이너, 관객 모두와 다각도로 관계한다. 그런데도 풀어야 할 1차적인 문제는 도면이 ‘누구의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언제의 것인가’라는 시간의 차원이었다. 전시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제작된 도면을 연구 자료로 살피는 나는 언제나 해당 전시가 끝난 후의 시간대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시 공간 구성과 배치, 디자인, 설계가 다 끝났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전시 도면은 작품 배치를 하고 그에 합당한 공간을 물리적으로 디자인한다. 궁극적으로는 많은 큐레이터와 디자이너들이 그렸다가 최종 도면에서는 지우는 화살표, 즉 관객의 동선을 만들기 위해서다. 반면 관객은 눈앞의 전시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동선을 머리로, 발로, 눈으로 삼중화시켜 그려낸다.
전시 도면은 기능에 따라 변한다. 계획으로만 남은 미실현 전시, 관객들에게 전시장 리플릿으로 전달되는 전시 도면의 과감한 압축본 도면, 온라인 전시 프로젝트의 도면에 이르기까 지 다양하다. 그렇기에 공간 계획을 짜는 도면이 지닌 전시 만들기의 측면뿐 아니라 전시 이후 아카이브가 될 때 갖는 기록의 측면을 중요하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도면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첫 단계에서는 내 머릿속 한편에 항상 건축 도면이 있었다. 전시 도면은 과연 건축 도면의 엄정한 언어가 갖는 규칙을 가질 수 있는가? 미술관 공간 디자인에 관련된 초기 사료를 간직한 뉴욕 현대미술관(MoMA) 등의 사례를 연구할수록, 전시 도면의 비교 대상은 전시를 기록하는 전시 사진(installation view)이 되어갔다.
사진 속 완성된 전시와 도무지 매칭이 되지 않는 초기 단계의 도면부터 스케치업 등 여러 툴을 사용한 기술적 도면에 이르기까지, 전시 도면은 그 자체로 주요한 매체였다. 전시 공간은 작품 배치가 끝이 아니다. 작품 사이를 오가는 관객의 동선을 구상해야 한다. 전시를 보기도 바쁜데 무슨 도면까지 보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까?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질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전설적인 독립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이 남긴 방대한 아카이브 덕분에 그가 기획한 모든 전시의 도면을 볼 수 있었다. 시간순에 따라 아이디어를 기록한 메모는 스케치로 나아갔다. 그리고 작품 사이즈, 가벽, 통로의 너비, 관객 동선이 적힌 단계로 점프했다. 물론 하랄트 제만이 전시에 기여하는 도면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뿐 아니라 그래픽 디자이너와 같은 자세로 지면을 구조화했다. 특히 1960~1970년대에 여러 예술가들과 일하면서 예술가들이 만든 선언문이나 계획이 담긴 프로포절proposal 형식에 매력을 느꼈다. 그의 아카이브를 보면 전시 도면은 쓰임새나 기능보다는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전시 공간을 직접 운영하는 내 경우에는 달랐다.
2013년 여름, 전시장이 아니었던 한옥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명명하기 위한 첫 단계는 전시 도면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공간의 수직·수평 사이즈와 층고를 실측했고 도면을 공유했다. 그렇게 해야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과 원만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었고 어떤 작업이 이 공간의 벽을 뚫지 않고 들어와서 배치될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전시 도면에 관해 말하는 것은 전시를 만들고 보는 방식을 주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를 비롯한 많은 제작자, 설계자, 협력자들이 전시라는 ‘복합체’ 안팎에 존재했음을 기록하는 일이다.
현시원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전시 공간 ‘시청각 랩’ 대표이자 독립 큐레이터.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스노우플레이크〉 등 여러 전시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전시 방법론과 뮤제올로지를 연구하며 〈사물 유람〉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고 말하기〉 〈1:1 다이어그램-큐레이터의 도면함〉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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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도면에 관해 말하는 것은 전시를 만들고 보는 방식을 주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를 비롯한 많은 제작자, 설계자, 협력자들이 전시라는 ‘복합체’ 안팎에 존재했음을 기록하는 일이다.Share +바이라인 : 글 현시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