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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Design Essay 1센치미터를 위한 노력
“휠체어 하나 진입하지 못하는 건물을 과연 잘 지은 건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건축가로서 첫발을 내딛은 신입 사원 시절, 계단 도면을 그리는 일이 주어졌다. 중요한 판단이 필요치 않은, 신입 사원이 하기에 적절한 일을 골라 맡긴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미 그려놓은 도면이 있으니 그 도면대로 치수에 맞게 변형하면 되는 단순한 일이었다. 어렵지 않게 일을 마치고 내가 그린 도면과 다른 사람이 이미 그려놓은 도면 2개의 검은 창을 띄워 놓고 찬찬히 비교해보다가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입 사원이 그린 도면이니 자잘한 실수는 당연히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싸늘한 느낌은 도면이 아닌 내가 택한 직업이었다. 건축설계가 무엇을 하는 일인지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것이다.

내가 그린 도면과 다른 사람이 그린 도면의 가장 큰 차이는 계단의 치수였다. 내 도면은 마지막 계단의 높이가 다른 계단보다 약간 높았다. 다른 이가 그린 도면은 모든 계단이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정확하게 일치해 있었다. 나는 계단 높이가 1~2센티미터 정도 차이 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계단 높이가 좀 다르면 안 되냐고 물어보았다. 모두들 이게 무슨 참신한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계단 높이를 일정하게 맞추는 것은 꽤 번거로운 일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규칙적으로 만들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잘 나눠지지도 않는 소수점 숫자의 높이로 한 층 한 층 만들어야 하고, 어떤 부분의 골조는 두껍고 어떤 부분의 골조는 얇아야 하니 얼마나 복잡하고 귀찮은 일인가.

골조는 계단의 뼈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골조를 타설할 때 약간의 오차가 발생하면 콘크리트를 잘라야 하는,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고통으로 이어진다. 비단 계단뿐만이 아니라 건축의 모든 부분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평평한 천장을 위해 배관으로 곡예를 하고, 바닥을 평평하게 하기 위해 골조는 울퉁불퉁하게 타설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모든 건물이 그렇게 정성스럽게 짓는 것인 줄 정말 몰랐다. 건축에서는 1~2센티미터의 차이가 큰 것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그 작은 차이로 발을 헛딛게 만들 수도 있고, 계단에서 구르게 만들 수도 있다. 건축의 모든 부분에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치밀하게 설계한 배려가 숨어 있다.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복잡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땐 이미 이 일을 시작해버린 뒤였다.

몇 년 전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다가 루게릭병을 앓고있는 사람과 그 가족들의 영상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채널은 주인공이 루게릭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 이야기로 시작한다. 점점 계단 내려가기가 힘들어지고, 아주 작은 것에도 걸려 넘어지는 등 일상의 작은 문턱에 걸리기를 반복하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한다. 병과 함께 지내는 동시에 건물과 싸우는 사람이 되어갔다.

화면을 통해 한 사람에게 이동이 얼마나 버거운 일이 되어가는지 지켜봤다. 1~2센티미터의 오차가 얼마나 큰 벽이 될 수 있는지를 조마조마하게 바라보았다. 설계할 때 별생각 없이하는 일이 구원이 되는 순간을 바라보았다. 으레 그려 넣던 계단 옆 손스침, 적절한 높이의 난간…. 설계 사무소의 검은 모니터 안에서 이뤄진 일이 일상의 작은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왜 거기까지만 노력했을까 부끄럽기도 했다. 유튜브 채널의 주인공은 언제부턴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인공은 종종 가족들과 힘께 하는 외출을 즐긴다. 사이좋은 가족은 휠체어를 타고 가다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선다. 휠체어에서 내려 잠시 기다린다. 어머니가 주인공을 부축하고 있는 사이 남동생은 휠체어를 높은 곳까지 올려놓고 다시 내려와 누나를 업고 올라간다. 동생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것을 볼때면 나는 주인공이 미안한 표정을 짓지 않길 바란다.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휠체어를 타거나 들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난관을 겪어야 하는지, 작은것 때문에 오던 길을 얼마나 되돌아가야 하는지를 보면서 나는 건축을 좀 더 복잡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건물을 설계할때 계단 치수를 동일하게 맞추는 세밀함을 건축 일의 본질이라고 했을 때, 휠체어 하나 진입하지 못하는 건물을 과연 잘 지은 건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반성하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건물을 설계할 때 휠체어가 건물 안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도록 경사로를 욱여넣고, 아주 넓은 복도는 아닐지라도 휠체어가 회전할 수 있는 반경의 공간을 항상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반성을 했을 뿐 노력을 했다고 말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다. 어느새 계단 높이를 맞추는 것이 익숙해진 것처럼, 그래서 건축이란 것이 원래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처럼, 다양한 삶을 고려하며 더 다양한 사람을 품는 것이 건축이라 믿기로 했다.




건축가. 윤한진, 한양규와 함께 푸하하하 건축사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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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한승재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