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는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됐습니다. 고작해야 10여 년 전 한 은막의 스타가 내뱉은 “예뻐야 돼, 무조건!”이라는 대사가 반짝 유행했을 뿐이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유일한 가치인 양 강요받아온 (그리고 그걸 꽤나 순순히 수용한) 저 같은 40대 대한민국 수컷은 경우가 더 심합니다. 자신의 내·외면을 성찰하고 풍성하게 가꿀 기회를 채 가져보지 못한 채 자랐기 때문에 (학문적 접근 정도를 제외하면)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 자체가 왠지 남사스럽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본디 아름다움을 논해야 할 대화의 공백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잿빛 현실입니다. 부동산이 어쩌네, 주식이 어쩌네. 더 슬픈 건 아름다움에 가장 가까워야 할 디자이너조차 어쩐지 이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 세상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사용성이나 문제 해결 도구로서의 디자인도 좋고(그리고 이것 역시 소크라테스의 세 가지 미의 범주 중 하나인 기능적인 아름다움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만), 심오한 철학 내지 경제적 가치 창출의 일환으로 디자인을 거론하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근원적이고 불가해한 근원적 아름다움에 대해 대화를 나눴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아마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몇 해 전 그래픽 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Stefan Sagmeister와 제시카 월시Jessica Walsh가 공동 기획한 〈사그마이스터 & 월시: 뷰티〉전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움베르토 에코의 열렬한 추종자인 저는 보편적 아름다움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절반밖에 동조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아름다움에 대한 담론이 빈곤해졌다는 이들의 지적은 정확 했습니다. 월간 〈디자인〉은 이번 호 뷰티 산업 속 디자인에 주목합니다. 혹자는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릅니다. 뷰티 산업, 특히 K-뷰티 산업의 황금기가 지나갔다는 게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 에세이를 기고한 중앙대학교 최완 교수의 말마따나 ‘전 국민이 알아주는 힘든 업종’이 된 게 사실입니다.
몇 달 전에는 일찍이 이 산업에 뛰어들어 회사를 성장시킨 디자이너 후배들이 찾아와 사업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시점에 우리가 뷰티 산업을 들여다보는 일이 그리 늦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니, 어쩌면 질주하듯 성장 가도를 달리던 예전보다 더 적기일지도 모르죠. 아름다움의 담론이 말소된 시대에도 가장 직관적이고 원초적으로 미에 집중하는 성역이 바로 뷰티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뷰티’와 ‘디자인’. 때로는 ‘역전 앞’ 같은 겹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가장 친밀한 동조 관계로 보이기도 하는 두 단어의 미묘한 역학 관계 속에서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고찰해보게 됩니다.
일명 클린 뷰티는 아름다움과 윤리성에 대해, 테크놀로지를 접목해 철저한 개별화를 추구하는 사례와 디자이너를 필두로 운영하는 인디 뷰티 브랜드에게서는 아름다움의 상대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되죠. 여러분이 떠올리는 아름다움의 속성이 무엇이든 그것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닙니다. 고대 그리스 델피 신전 서쪽 박공에 아폴론의 뮤즈가, 동쪽 박공에 디오니소스가 새겨져 있었다고 하죠. 그만큼 아름다움은 기묘하고, 혼재되어 있으며, 입체적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이제 다시 아름다움을 이야기해봐요.
- 우리, 이제 다시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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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e +바이라인 : 글 최명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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