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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Design Essay 리테일 공간의 주인공은 제품이 아니다
“거의 모든 제품의 구매가 온라인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존속에 대한 당위성을 찾았다. 리테일 공간을 호스피탈리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리테일 공간의 주인공을 제품(merchandise)이라 생각하기 쉽다. 만약 리테일 공간이 단순히 고객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물리적 거래의 장소라면 가장 주목받아야 할 것은 판매 대상인 제품이 맞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의 가장 큰 역할이 경험이 된 지금, 리테일 공간의 주인공은 무엇일까? 여전히 제품일까, 아니면 브랜드일까? 혹은 고객일까?

2023년 마케팅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리테일과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어인 리테일테인먼트retailtainment를 꼽은 기사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1999년 미국 사회학자 조지 리처가 발표한 책 〈Enchanting a Disenchanted World: Revolutionizing the Means of Consumption〉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환경, 감정, 소리, 활동 등을 활용해 고객이 제품에 흥미를 느끼고 구매할 마음이 들도록 유도하는 마케팅 방식을 뜻한다. 리테일테인먼트 경향을 반영한 뷰티 브랜드 공간으로는 2019년 오픈한 ‘아모레 성수’를 들 수 있다. 아모레 성수는 아모레퍼시픽의 30여 개 브랜드에서 출시한 3000여 개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자연 속에서 세안하는 듯한 공감각적 경험을 연출한 클렌징 룸부터 정원으로 둘러싸인 실내 공간의 소파에 앉아 자유롭게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까지, 일련의 고객 경험을 촘촘하게 설계했다.

다시 말해 리테일테인먼트는 완전히 새로운 흐름은 아니지만, 오프라인 활동이 극단적으로 제한된 팬데믹 시기에 거의 모든 제품의 구매가 온라인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존속에 대한 당위성을 찾기 위해 급속도로 주류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또 자신이 구매한 제품을 통해 사회적 신념을 드러내는 ‘미닝아웃’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며 리테일 공간 디자인은 가치관을 제시하며 고객과 브랜드가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데 목적을 두게 되었다.

특히 최근 뷰티업계에서는 가치 소비의 키워드로 ‘친환경’, ‘재생’, ‘비건’을 빼놓을 수 없으며, 진정성의 유무까지 주요한 가치 지표가 되었다. 예를 들어 2014년 문을 연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유네스코점은 건물 외벽을 화분으로 가득 채웠으며 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로 친환경 매장을 표방했다. 그러나 최근 환경을 키워드로 한 뷰티 브랜드의 리테일 매장은 단순히 공간 내·외부에 자연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디자인이 실질적으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고려한다.

아모레퍼시픽이 2021년 선보인 이니스프리 공병공간점은 소비자가 사용한 공병을 수거하고 파쇄해서 만든 타일을 최대한 살려 리뉴얼함으로써 디자인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였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업사이클링 과정을 소비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아틀리에를 조성해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고객이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했다. 이솝도 이러한 맥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글로벌 뷰티 브랜드다. 2021년 오픈한 이솝 성수는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단열 효과가 있는 흙을 벽재로 사용하고, 철거된 현지 건축물에서 목재를 조달해 공간을 만들었다.

이처럼 친환경적 디자인의 개념이 지속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2014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등장한 미국 건축가 데이비드 벤저민의 버섯집 ‘Hy-Fi’를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균사체를 배양해 벽돌을 만들고 이를 건축에 적용한다는 발상이 당시에는 실험적으로 다가왔는데 친환경에 대한 고민이 다각화된 오늘날 이는 제법 일반 적인 방식이 되었으니 말이다.

브랜드의 방향성과 궤를 함께하는 예술 작품을 리테일 공간에 배치하거나 전시 형식을 빌려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트 마케팅 전략도 눈에 띈다. 동시대 창작자들과 지속적으로 협업해온 이솝은 폐비닐로 오브제를 만드는 김지선 작가의 작품을 삼청동 매장에 설치해 재생과 순환에 관한 브랜드의 지향점을 보여주었다. 또 2021년 향수 아더토피아를 출시하며 이탈리아 미디어 아티스트 다비데 콰욜라와 함께 새 컬렉션의 세계관을 제시하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지난해 롱테이크Longtake를 출시하며 브랜드의 지속 가능한 가치를 보여주는 전시를 통해 잠재적 소비자와 만났다. 숲에서 비롯된 여러 자연 소재를 활용해 향에 대한 브랜드 철학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한 전시였다.

어쩌면 브랜드의 오프라인 매장은 여러 고민이 수반된 팬데믹 시기를 지나면서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리테일 공간을 호스피탈리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한편으로는 시각적 화려함과 자극을 추구하는 공간이 염려되기도 한다. 지나치게 장식적인 디자인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가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제공하는 경험의 세밀한 설계에 집중한다면 브랜드의 본질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뷰티 브랜드의 리테일 공간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철학과 가치에서 출발한 정제되고 일관된 메시지일 것이다.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이자 호스피탈리티 공간 전문 디자인 회사 스튜디오 익센트릭 설립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저서로 〈공간디자인을 하면서 배운 101가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공간디자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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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김석훈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