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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Design Essay 화장품 회사로 살아남기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디자인은 생존 확률을 높여주는 개구리 뒷다리다.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올챙이들이 우글대는 웅덩이를 벗어나야 한다.”

2010년대 초·중반에는 화장품 사업을 한다고 하면 “와, 그래요? 화장품 사업이 요즘 잘나간다면서요?”라는 말을 들었다. 요즘은 사뭇 다르다. “아, 그러세요? 요즘 화장품이 많이 어렵다면서요?”라고들 한다. 전 국민이 알아주는 힘든 업종이 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과도한 경쟁이다. 대한민국에 화장품 기업 3만 개 시대가 도래했다. 1990년대에 화장품 기업은 100여 개에 불과했는데 2012년 화장품 제조 업체와 책임 판매업체가 각각 477개, 823개로 증가했다. 이후 10년이 지난 2023년 7월 현재 화장품 제조업체, 책임 판매업체의 수는 각각 4600개, 3만 800개로 집계되고 있다. 그 숫자가 무려 10배와 38배로 늘어났다.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 화장품업계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마치 용광로와 같은 열기였다. 국내 소비자들의 화장품에 관한 관심도 이전보다 커졌고 이에 부응해 수많은 업체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에 없던 유형의 제품을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총수요의 크기가 커졌다. 그 덕에 2013년에 7조 9000억 원이던 생산 실적이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2021년에는 16조 6000억 원으로 늘었다. 국내 시장에 머물지 않고 큰 폭의 수출 증가세를 보이기도 했다. 2021년 10조 6000억 원의 수출액을 기록했고 우리나라 무역수지 흑자의 27%를 차지하는 효자 품목이 되었다. 화장품업계는 단기간에 큰 성장을 이루며 국가 차원에서 응원 받을 만한 위치에 섰다. 반도체, 전기 자동차처럼 육성 정책을 펴 지원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잘 컸다. 국가 무역수지 흑자의 4분의 1 넘게 책임지고, 화장품 수출 세계 3위까지 오른 효자다. 대견스러울 만하다. 하지만 이는 국가 차원에서의 이야기다. 개별 기업들은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빠른 성장의 후유증이 가장 큰 원인이다. 채 검증이 끝나지 않은 제품이 쏟아져 나오며 한국 화장품의 평판을 깎아먹는 일이 생기고, 시장에 제품이 넘쳐나다 보니 고객들의 피로감도 커졌다. 집집마다 안 쓰는 볼펜이 한 움큼 넘게 굴러 다니듯 이제는 안 쓰는 화장품이 넘쳐난다. 판매처를 찾지 못한 기업도 MOQ(최소 생산 수량, Minimum Order Quantity)만큼 제품을 만들어서 쌓아놓는가 하면, 사용 기한이 남았어도 고객들이 집 앞 방앗간에서 막 만든 것처럼 신선한 제품을 선호하니 팔지도 못할 제품을 또 만드는 악순환을 겪는 기업이 천지다. 이런 상황에 코로나19, 중국 정부의 규제 강화 등으로 2022년 생산 실적이 2017년 수준인 13조 6000억 원으로 급감하는 위기 상황을 맞게 되었다. 화장품 수출 순위도 세계 4위로 한 계단 내려앉았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한 대공황 이전까지만 해도 산업화한 서방 국가들은 효율적으로 많이 만들어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생산성이 올라갈수록 세상이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경제학자들조차 경기 호황의 끝이 오히려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포디즘fordism, 테일러리즘taylorism의 기여로 생산 효율성은 극대화되었으나 이것은 만성적 과잉 생산의 문제를 일으켰고 결국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국내 화장품 산업은 OEM·ODM 업체들과 브랜드사들의 분업 체계가 자리 잡으면서 극대화된 효율성의 이점을 누렸다. 다만 잘 자리 잡은 이 분업 체계로 인해 너나없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드는 현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두렵다. 과잉 생산의 끝이 무엇인지는 역사가 이미 보여주고 있다.


아직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지 못한 브랜드에게 지금의 화장품업계는 올챙이들이 우글거리는 가뭄철의 작은 물웅덩이와도 같다. 경쟁 상황이 극심한 이 웅덩이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말라 죽게 될 것이다. 생존 확률을 높여줄 개구리 뒷다리가 필요하다. 강력한 개구리 뒷다리로 웅덩이를 박차고 나가 초보 기업들의 마이너리그를 벗어나 한 차원 높은 경쟁 상황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디자인이다. 고객의 상품 채택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인 AIDMA에서 A는 ‘Attention’이다. 일단 고객의 시선을 끌고 관심을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디자인의 중요성이 커진다. 마트에서 먹거리를 살 때도 포장재 디자인에 끌리고, 내 생명을 싣고 달리는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디자인을 첫째로 고려하는 시대다. 화장품에서 감성은 일종의 기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효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대기업에 머물다 나와서 작은 기업을 시작할 때 난 농사짓다 전쟁터에 나간 느낌이었다. 세상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고, 더 늦게 시작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도 했다. 스스로의 모자람에 머리통을 치기도 했다. 오늘도 치열하게 생존을 고민하고 브랜드의 미래를 그리고 있을 화장품업계 임직원분들에게 동지로서 격려의 마음을 전 하고 싶다. 앞으로도 많은 기업이 새롭게 진입하고 실패를 겪고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일하며 발산한 에너지는 귀한 영양분으로 남아 국내 화장품 산업에 힘을 보태리라 본다. 한번 달아오른 용광로는 쉽게 꺼지지 않는 법이다. 다만 내 기업이 거름이 될 것인가, 나무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거름보다는 나무가 되기를 희망한다.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화장품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아모레퍼시픽 마케팅전략사업부장, 빅디테일 대표를 거쳐 중앙대학교 교수로 있다. 대한민국 화장품 산업의 지속 발전을 위한 질적 연구가 관심사이다. 저서로 〈화장품 회사로 살아남기〉 〈화장품 창업과 경영〉 〈글로벌 마케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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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최완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