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대와 이상도는 30년 동안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일종의 프로젝트형 프리랜서라 불러야 할까. 각자 일을 하다가 큰 건수가 생기면 연락해서 힘을 합친다. 각자의 전문 영역이 있다. 구영대는 빈집을 귀신같이 터는 도둑이고, 이상도는 금고와 프로그램 해킹과 CCTV 전문가다. 30년 전 우연히 함께 일을 한 후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매료됐고, 오랜 기간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계획하고 수정하고 완성하고 성과를 배분하는 과정을 즐겼다. 투닥투닥 싸우긴 하지만 그것도 그들이 즐기는 일의 재미 중 하나였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게 2092년이었던가?”
구영대가 맥주를 마시다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2093년 1월 4일. 겁나게 추웠던 날이지.”
이상도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이야, 그걸 기억해?”
“얼마 전에 뇌 용량 추가해서 백 년 전까지 다 기억할 수 있어. 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다 물어봐.”
“은퇴하려니까 지난 일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뭐 어떤 일들? 옥상 정원에 잠입했다가 얼어 죽을 뻔했던 일?”
“야, 그건 잊어버려라. 너는 자꾸 흑역사를 끄집어내더라.”
“그걸 어떻게 잊어버려. 이끼로 위장한 모습이 진짜 웃겼는데.”
“내가 이끼를 뒤집어썼던가? 줄고사리 같은 거 아니었어? 내 기억으로는 양치류를 뒤집어썼던 것 같은데?”
“이끼를 등에다 선크림처럼 발랐잖아. 그렇게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 밤에 조금씩 움직이면 CCTV도 감지 못 한다고 우겼잖아. 사진 보여줘?”
“사진도 있어?”
“내가 너무 웃겨서 CCTV 캡처해둔 거 있어. 보여줘?”
“됐어. 흑역사라니까.”
“넌 이제 은퇴하는 게 맞아. 그런 구닥다리 방식으로 이젠 판자촌도 못 털어. 판자촌 사라진 지도 오래지만···.”
“그렇긴 하지. 창신동 회오리 골목에서 오토바이 타고 도망치다가 자빠졌던 거 기억나?”
“어떻게 잊어버리냐. 그때 상처가 여기 아직도 있는데.”
“그런 골목이 많아야 도망치기도 좋고, 어디 짱박히기도 쉬운데 말야. 옛날엔 낭만이 있었는데···. 한강만 해도 그래, 예전에는 스토리가 있었잖아. 아빠가 미안하다, 첨벙. 야 이 개새끼들아, 잘 먹고 잘 살아라, 첨벙. 요즘 한강은 한강 같지가 않아. 한강 다리 위에다 아주 도시를 만들어놓으니까, 뛰어내리는 사람도 없고, 술 취해 뻗어서 털어먹을 인간들도 없고.”
“좋아진 거지. 나는 한강에서 사람 죽었다는 소식 안 들리니까 속이 다 시원하더라. 구영대 너도 이제 새로운 시대에 맞춰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봐. 맨날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 도둑이라는 헛소리하지 말고 살길을 찾아봐.”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이번 건만 잘되면 작은 가게 하나 낼 거야.”
“무슨 가게?”
“CCTV랑 드론 전문 가게 내서 너하고 경쟁하려고.”
구영대는 오래전부터 세워둔 계획이 하나 있다. 3개월 전부터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뒤를 밟고, 시간대를 확인하고, 변수를 상상했다. 준비가 다 된 것은 아니지만 더 늦어지면 시작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마지막 작업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은 신림동에 살고 있는 전설의 ‘폐지 노인’이다. 지금 시대에 거리에 나뒹구는 폐지는 전혀 없다. 재활용 센터에서 모든 걸 무료 수거해 가기 때문에 거리에서 돈 될 만한 뭔가를 찾아내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폐지 노인은 여전히 거리를 매일 순찰한다. 소문에 의하면 폐지 노인의 재산은 수백억 원에 달한다. 수십 년 동안 모은 돈으로 집을 여러 채 샀고, 장학 재단도 만들었으며, 기부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모두 소문이지만 구영대는 소문을 굳게 믿었다. 구영대는 폐지 노인 집 근처를 기웃거리면서 보안 장치가 거의 없다는 것과 노인이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며 거리만 돌아다닐 뿐 은행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분명히 집 안에 훔칠 만한 게 있다.
구영대는 도둑들 사이에서 직감의 달인으로 유명했다. 어떤 집에 보석이 많은지, 어떤 집의 보안 장치가 허술한지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도시의 시스템이 진화하면서 구영대가 직감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점점 줄어들었고, 무기를 들고 들어가서 강탈을 해 가는 경우는 있지만 빈집을 터는 도둑은 사라지는 추세였다.
“야, 진짜 보안이랄 게 하나도 없네? 네트워크도 안 잡히는 거 보면 무주공산이네. 이런 집이 지금까지 있는 것도 신기하다.”
이상도가 자동차 안에서 폐지 노인의 집을 보면서 말했다.
“서울에 남은 몇 안 되는 보석이라고 할 수 있지.”
구영대는 입맛을 다시면서 망원경으로 창문을 보았다.
폐지 노인의 집은 커다란 나무줄기가 건물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것처럼 낡았지만, 나무줄기가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 같기도 했다. 주변에 다른 빌딩이나 주택이 없어서 더욱 기괴해 보이는 3층 건물이었다. 폐지 노인이 건물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천천히,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달팽이나 바다거북 같았다. 모자를 푹 눌러쓴 폐지 노인의 모습이 골목 끝에서 사라졌다.
“오늘은 망만 봐줘. CCTV 전문가한테 이런 걸 맡기려니까 미안하지만 고전적이고 좋잖아? 혹시 열어야 할 금고가 나오면 바로 연락할게.”
구영대는 이상도의 어깨를 툭 치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온갖 종류의 종이가 작은 언덕처럼 쌓여 있었다. 오래된 잡지도 있고, 책, 신문도 있고, 명세서 같은 것도 들어 있었다. 입구의 종이 언덕 때문에 집이 지저분할 것 같았지만 다른 구역은 정리 정돈이 잘되어 있었다. 구영대는 2층에 현금과 귀중품이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서 첫 번째 방으로 들어서자 노인이 앉아 있었다. 구영대는 소리를 지르려다가 자신의 입을 막았다.
“어, 어, 어떻게?”
구영대는 방으로 들어서야 할지 문을 닫고 도망쳐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야? 구영대 씨, 요즘 세상을 너무 모르신다.”
폐지 노인이 말했다. 노인의 모습은 바다거북이나 달팽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매끄러운 피부, 숱이 많은 헤어스타일 덕분에 50대 남자처럼 보였다.
“저를 아세요?”
“알지. 다 조사해봤지. 며칠 동안 우리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셨잖아.”
“아까 분명히 나갔는데···.”
“그건 나를 닮은 로봇이야. 요즘 어떤 노인이 직접 산책을 해. 산책하는 경험만 느끼면 되는 거지.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있나. 그래도 밤에는 가끔 나가. 구영대 씨가 염탐하지 않을 때.”
“그럼 폐지도 안 줍는 겁니까?”
“폐지? 아, 입구에 쌓여 있는 거? 그거 설치 작품이야. 제목이 뭐더라? ‘종이에 새겨진 마지막 서울’이던가? 내려가서 구경이라도 해요. 곧 경찰이 도착할 테고,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1~2분밖에 없을 텐데···. 아쉬워서 어째.”
노인의 말이 끝나기 전에 구영대는 잽싸게 뒤돌아서 달렸다. 계단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구영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고, 구영대는 계단을 굴렀다. 구영대가 굴러서 도착한 곳은 종이 언덕 아래였다. 구영대의 눈앞에 낡은 잡지의 표지가 보였다. 거기에는 ‘100년 후 서울은 어떻게 변할까?’라고 적혀 있었다. 구영대는 생각했다. 2223년에도 서울이 남아 있을까?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2000년 〈문학과사회〉에 중편소설 〈펭귄뉴스〉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엇박자 D〉로 김유정문학상을, 〈1F/B1〉으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요요〉로 이효석문학상을, 〈가짜 팔로 하는 포옹〉으로 동인문학상을, 〈휴가 중인 시체〉로 심훈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 Design Essay 마지막 서울을 훔쳐라
-
Share +바이라인 : 김중혁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