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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Design Essay 숨도시

도시계획 총괄 디자이너가 140세를 넘긴 노인이라는 것에 떠들썩해진 지도 49개월이 지났다. 잔잔한 파장을 지닌 채 대국민 발표회에서 처음 소개된 ‘셀리’는 한국계 독일인이었고, 엄밀히 따지면 한국인도 아니었으므로 논란은 더욱 뜨거워졌다. 인터넷에는 #비리 #수사 #형평성 #불공정 따위의 키워드가 남발했으며 그녀가 그간 해온 작업물을 꺼내오며 #올드스타일 #실버타운 #구시대 따위의 단어가 뒤이어 따라붙었다. 당시 그녀를 둘러싼 단어만 서른 개가 넘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화제는 하루아침에 쓸려가 그 이상의 이목은 끌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에 대한 논란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인물 하나당 단어는 보통 열 개에서 열다섯 개 정도 붙는 것이 통상적이었으므로 그녀를 향한 주목도는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보다도 높았다. 그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종의 노인 혐오나 제노포비아가 기반에 깔려 있을 것이라 본다. 나 역시도 그와 비슷한 글의 기사를 내놓았다. 어쨌거나 그런 관심은 클라우드에 일시적 트래픽을 만든 후 가라앉았다. 계획도시에는 예정대로 하늘을 가리는 대규모 차폐막이 형성되었고 그로부터 49개월이 지났다. 일주일 후면 꼭꼭 감춰두었던 신도시가 공개될 예정이었다. 기대와 걱정이 가득한 단어들이 슬금슬금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녀를 향한 인터뷰가 쇄도했지만 그녀는 여태껏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그녀의 나이가 노쇠하여 인터뷰할 기력이 없다]는 문장들이 클라우드에 공유되었다. 모두가 공감을 눌렀고, 자신의 클라우드로 문장을 옮겨놓았다. 나는 유일하게 공감을 누르지도, 문장을 옮겨놓지도 않은 기자였다. 그 안에 깔린 조롱과 비하가 불편해서였다.

“내가 왜 기자님의 인터뷰만 응했는지, 생각해봤나?”

그리고 유일하게 그녀를 인터뷰하러 그녀의 사택에 온 지금, 나는 그녀의 질문을 보며 저 문장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문장은 옮겨 적을 수 없었다. 나는 클라우드에 재빠르게 다른 문장을 입력했다.

[네.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클라우드에 내 문장이 뜬 건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통에 문제가 없어 다행이었다. 그녀의 사택 창문은 차폐막으로 하늘이 가려진 상태였지만, 천장에 구현된 하늘로 답답함은 없었다.

“전화로 요청한 유일한 기자야. 죄다 클라우드에 메시지만 계속 보냈거든. 짜증 나서 나중에 꺼버렸어.”
[그럼 소통이 안 되실 텐데요.]

클라우드는 머릿속에 심어둔 연결망으로, 사람들은 말이 아닌 문장으로 소통했다. 소셜 네트워크에 글을 쓰듯, 서로 마주 보고 있어도 클라우드에 문장을 써 전송하는 시스템이었다. 문자로 소통하는 방식은 실수를 방지하고 효율적이다. 말은 대개 두서가 없고, 던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문장은 상대방에게 전송하기 전에 스스로 확인이 가능하며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 클라우드를 사용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덕분에 도시는 조용하고 윤택해졌다.

“몇 개의 단어를 보관하고 있지?”

그녀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저는 1만 3천 개의 단어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근데 왜 전화를 했나? 1만 3천 개의 단어를 가지고 구구절절한 문장을 만들지 않고.”

나는 어딘가 묘연해진 기분으로 대답했다.

[간절해 보이니까요.]

그녀가 만족한 듯 웃었다.

“내가 기자를 잘 골랐구먼.”

나는 문득 실로 오랜만에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낮고 감미로웠다. 그녀가 베란다 창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기자님은 나한테 던질 질문 목록을 열 개쯤 만들어 왔겠지.”

정확히는 열여섯 개였다.

“그중에서 나한테 던질 첫 번째 질문은 아마도, 새 도시 디자인의 목적이겠지? 어떤 슬로건을 걸고 만들었느냐, 뭐 그런.”
[네, 그렇습니다.]

도시는 베일에 꼭꼭 감춰져 있었다. 무엇을 목적으로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내가 쓰는 기사가 그 베일의 한 꺼풀을 벗기는 첫 문장이 될 거였다. 여태껏 세 번 도시 디자인이 바뀌었고, 모두 바뀐 도시를 즐겼다. 그녀가 만든 도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향후 20년간 유지될 거였다.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러했다.

사택 뒷문으로 나간 그녀가 차폐막 문 앞에 섰다.

“내 도시는 말이야, 백 줄의 문장보다 한 번의··· 숨이 모든 걸 말해주지. 보겠나?”
[네.]
“보고 나면 아무 문장도 쓸 수 없을 건데.”

그녀가 나를 놀리듯 웃었다. 잠금장치에 지문을 인식하고 문을 열었다. 쏟아지는 햇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눈앞에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고, 그리고···.

“아···.”

그것은 내 입에서 터진 소리였다. 그녀가 옆에 나란히 서며 말했다.

“이 도시의 이름은 ‘떠드는 도시’.”

아침과 낮이, 저녁의 노을과 밤의 하늘이 모두 아름다울 것 같은 도시였다.

“내 목적은 사람들이 다시 말을 하게 하는 걸세. 실수해도 좋고, 비웃어도 좋고, 후회해도 좋으니 편하게 앉아서 아무 말이나 늘어놓는 도시를 만드는 거야.”
[···그게 왜 필요합니까?]
“그건 내가 말하지 않아도 기자님이 알아서 써줄 것 같은데?”

그녀가 어깨를 두드리고 자리를 떴지만, 나는 자리에 못 박힌 듯 한참 동안 서서 그녀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곧 이곳을 함께 볼 사람들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들의 얼굴과 표정이 생생하게.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 첫 문장을 적었다.

소중한 사람의 웃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으십니까?




2019년 〈무너진 다리〉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 개의 파랑〉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무너진 다리〉와 〈나인〉으로 SF 어워드 장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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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천선란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