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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피드백의 힘을 믿는 이유
“피드백을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무수히 쌓인 피드백의 레이어는 스튜디오의 전략 및 방향성과 직결된다.”

디자이너는 혼자 일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방에 들어가는 시간도 분명 존재하지만 디자이너 홀로 짐을 짊어질 시간은 그다지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산업 디자이너는 대량생산을 위한 거대 자본을 갖춘 기업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거나 혁신적 제품으로 파장을 일으키기를, 또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가치를 전달하기를 바라면서 프로젝트에 임한다. 그 과정에서 동료 디자이너는 물론 협력자, 투자자, 개발자 등 많은 사람과 협력한다.

스마트폰이 태동하던 시절 나는 기업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했다. 당시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정성적인 생각을 갖고 엔지니어와 마케터, 상품기획팀의 정량적인 프로세스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했다. 핸드폰을 개발하기 위해 최소 6개 이상 부서, 80명에 가까운 인원이 이메일 체인에 들어와 메일을 기반으로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했다. 주요 결정 사항이 있을 땐 대형 회의실에 모여 끝장 토론에 가까운 회의를 하며 의견을 조율했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제시한 콘셉트를 다른 부서에 관철시키는 시행착오를 거쳤다. 성취와 좌절의 반복이었다. 결국 최종 디자인이란 유관 부서가 수백 번씩 주고받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선택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그 피드백을, 디자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푸념 정도로 치부하기도 했다. 마케팅팀에서는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이끌어내기 위해 경쟁사를 분석하고 규모를 분석하는 등 시장 중심적인 피드백을 줄 수밖에 없었고, 엔지니어들은 좀 더 큰 배터리 용량, 좀 더 큰 메모리, 더 큰 스크린 탑재 등 더 나은 성능을 위해 디자인 수정을 요구했다. 추상적인 요구를 다소 주관적이고 전문적인 디자인 언어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여러 레퍼런스와 도표 비교군을 함께 보여 주기도 했다. 마케팅팀에서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개발자가 이해하기 쉬운 숫자로, 또 상품기획팀이 이해하기 쉽도록 경쟁력과 사용성을 디자인 결과물에 대입해 설명해야만 했다.

10여 년 전 기업에서 독립해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고민한 부분 역시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한계에서 벗어나 독립 스튜디오로서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이해관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좀 더 디자인 중심적 사고로 가치 판단을 하고자 했다. 디자이너들이 잘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에 집중하고 싶었다. 이때 독립 스튜디오가 스스로 구축해야 하는 디자인 프로세스, 혹은 디자인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전개하기 위한 상호 피드백은 너무나 중요하다. 또한 디자인 스튜디오는 내부 구성원이 아닌 다양한 협력자와 함께 일한다. 하드웨어 엔지니어, 기구 개발 엔지니어(mechanical engineer), 목업 제작업체, CMF 선정에 도움을 주는 플라스틱-화학업체, 금형업체, 사출업체 등 하나의 제품을 출시하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사출 공장이나 목업업체의 후가공실에서 수십 번의 테스트를 거쳐 원하는 품질의 외관을 만들어나갈 땐 가끔 짠한 동지애까지 느낀다.

사회에 발을 내딛고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을 때 외부 협력 업체에 어떻게 피드백을 줘야 할지 망설이던 기억이 난다. 좀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재작업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고,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 번 더 수정을 부탁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확실한 것은 주어진 조건과 상황 속에서 최고를 만들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쌓인 피드백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때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그리고 협력자들은 함께 성장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솔직하고 두려움 없는 피드백의 긍정적인 힘을 믿는 이유다.

피드백을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무수히 쌓인 피드백의 레이어는 스튜디오의 전략 및 방향성과 직결된다. 선택과 고민 그리고 첨예한 소통을 끊임없이 반복할 때 스튜디오의 색깔이 선명해지며 한층 진보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다. BKID는 좀 더 정교하게 피드백을 주고받기 위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웠다.

1. 좋은 피드백을 위해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2. 프로젝트 초반부에는 열린 방식으로, 후반부에는 디테일하게 피드백할 것.
3. 피드백 언어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4. 민주적인 선택이 최선은 아니다.
5. 긍정적 피드백과 부정적 피드백의 균형이 필요하다.
6. 모든 피드백에는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 BKID 대표이자 디렉터. 서울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삼성전자에서 글로벌 스마트폰 제품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2010년 BKID를 설립해 공예에서 하이테크까지 다양한 영역에 호기심을 갖고 활동 범위를 확장해왔다. BMW, 알레시, 디즈니 등 글로벌 기업과 협력 작업을 진행했으며 2020년부터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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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송봉규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3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